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이 있는 송파구 일대는 예부터 삼남.동북지방
의 농수산물이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이었던 탓으로 일찍이 장이 서고 도매상
들의 상거래가 활발했던 곳이다.

"비변사등록" 등 기록에 따르면 이미 18세기 중반부터 송파장터는 상설
시장화되어 그곳 상인들의 상권이 조정에서 인정한 서울시전 상인들보다
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장터에서는 손님을 끌기 위해 상인들이 돈을 거둬 놀이판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송파산대놀이다.

송파상인들은 이처럼 상업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1791년(정조 15년)
조정에서는 서울상인들만 도성내에서 물건을 팔게 했던 조정의 규제
(금난전권)를 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인들이 서울의 상품유통을 장악하기 시작하자 부작용도 심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833년에 일어난 "쌀폭동"이었다.

송파장터 상인들과 함께 서울의 상권을 좌지우지 했던 한강변의 중도매인과
도매인들이 결탁해 쌀을 매점매석했다.

쌀값이 3배나 폭등했고 돈을 주고도 살 수 없게 되자 참다 못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쌀창고 15채에 불을 지른 사건이다.

당시 조정은 폭동의 주모자 7명, 객주 1명, 싸전주인 1명의 목을 베어
사태를 겨우 수습했다.

일부에서는 전자경매까지 실시하고 있는 현대화된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이지만 지금도 상인들의 농간과 횡포가 소비자들의 지탄을 받곤 한다.

지난해 여름에 중도매인들이 출하전의 농산물을 밭떼기로 매점매석한뒤
도매법인과 짜고 출하시기와 물량을 마음대로 조절해서 막대한 폭리를 취한
사건은 아직 농민과 소비자들의 기억속에 생생하다.

가락시장관리공사가 이 시장을 기네스북에 올리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연간 거래물량이 총 2백60만t이나 돼 프랑스 파리의 헌지스시장(2백5만t),
미국 뉴욕 헌츠포인트시장(1백10만t), 도쿄의 오타시장(92만t)보다 월등하다
는데서 나온 기발한 아이디어다.

거래량만 가지고 기네스북에 오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것보다
경매비리 등 상인들의 횡포를 막는 유통구조의 질적 우수성을 인정받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