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모일간지에 실린 미당 서정주님의 짧은 시 한편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내 늙은 아내"란 제목의 시였는데 시의 내용은 아침저녁으로 시인의
담배재떨이를 부시어다 주는 늙은 아내의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이 좋아서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찬찬히 신문을 읽을 기회를 갖게 되더라도 정치, 경제기사나 사설
등을 읽는 것이 보통이므로 시 한편은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필자가 노시인의 경지를 어찌 속속들이 이해할까만은 시를 다 읽고 나자
빙그레한 웃음과 함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사회가 어렵고 힘들때, 위기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열정과 "할수
있다"는 용기가 필요할 때, 우리를 일으키고 단결하게 하는 것은 따뜻한
애정과 신뢰가 아닐까 한다.

이른바 IMF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합심하여 새로운 경제에너지를
창출해야 하며, 수출확대를 통해 국제수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고통분담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위기가 우리가 오랫동안 키워온 가족애와 동료애, 이웃
사랑과 나라사랑의 마음마저 덜어 가도록 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질적 궁핍은 열심히 일하면 다시 메울 수 있지만 마음의 궁핍은 그 무엇
으로도 메울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가슴을 무겁게 만드는 어두운 기사가 신문 곳곳을 차지하고 있지만 경제
위기극복에 일조하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이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미담기사도 그에 못지 않다.

그날 필자는 밝아오는 창 밖을 보면서 이제는 나부터 굳었던 얼굴을 펴고
가족과 이웃과 동료 직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마음의 불씨를 간직했다 필요할 때 나누어줄줄 아는 노시인의
경지에 절로 고개가 수그려졌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