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 <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 >

지난 연말부터 혹독하게 몰아치고 있는 IMF한파로 가뜩이나 추운 겨울이
더욱 춥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에너지를 비롯한 각종 생활필수품의 가격인상이 줄을 잇고 있으며,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 와중에서도 정부와 언론, 그리고 환경전문가들은 작년 12월초 일본
교토에서 열렸던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의 결과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운바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온실가스의 배출억제를 목표로
진행된 이 회의의 결과는 교토의정서로 정리가 되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추가적인 의무가 부과되지는 않았지만 오는 11월에
열릴 차기회의에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준하는 의무를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실정이다.

그렇게 될 경우 그 결과가 우리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는 IMF한파에 못지
않게 심각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물론 미래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장래를 설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각계의 전문가들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IMF시대의 의미를 환경문제와 연계하여 이해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이 기회에 성장지향적 산업활동을 제약하는 각종 환경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할 것이라는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실은 환경문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아직도 성숙되지 못한
상태이며 국제적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이라는 양대과제를 안고 있는 오늘날의 환경문제가
인류의 영속성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후기 산업사회에 적합한 사회 경제적 패러다임을
근간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함과 동시에 생활양식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함은
이미 전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환경의 사회적 가치나 잠재적 비용을 고려함이 없이 경제성장을 통한
물질적 풍요를 추구해온 기존의 경제 메커니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주체들의 의식구조가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바뀌지 않는 한 경제적
환경적 문제의 치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IMF시대의 모습은 어떠한가.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경제적 파장이 산업활동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그 결과 에너지를 비롯한 각종 물자절약과 재활용증대,
대량실업 사태에 따른 고용기회확충 등이 사회적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은 환경친화적 산업정책 또는 환경경영의
관점에서 이미 수없이 제시되어 왔다.

문제는 이러한 과제들이 일시적인 경과조치에 그칠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최근 진행되고 있는 여러가지 사회 경제적 조치들은 IMF시대가
아니더라도 이미 실행에 옮겨졌어야 할 사항들이며, 인류의 미래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결론은 분명하다.

1970년대부터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화를 추구함으로써, 원천적으로
자원소모적이며 환경오염 유발효과가 높은 반면 고용창출효과는 오히려 낮게
되어 있는 우리의 산업구조로는 더 이상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지금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어느 선진국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중후장대
하고 환경에 유해하며 고용창출효과도 높지 않은 산업부문에 투자를 확대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경영전략, 그리고 가계의 소비행태가
모두 불가피한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정부는 시장기능의 왜곡현상을 초래해 온 각종 정책기능, 특히 가격구조를
정상화함과 동시에 산업정책과 환경정책의 연계를 보다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한 예로 국내 시장의 무차별적 개방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환경을
전제로 한 부분밖에 없으므로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편 기업은 우리의 핵심역량인 인력보다 차입자본이나 수입원료에 크게
의존해온 구태에서 탈피하여 환경친화적이고 고용창출효과가 높은 업종의
발굴에 주력해야 하며, 소비자는 기존의 자원소모적 소비패턴에서 벗어나
IMF시대에 실천하고 있는 소비관행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IMF한파와 앞으로 다가올 환경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경제적 패러다임과 이에 근거한 환경친화적
산업구조의 정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