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꿈꿀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도 과연 영화가 재미있을까 싶을 만큼
아마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무언가의 꿈이 그만큼 간절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혼자 보아도 즐겁지만 함께 보는 영화는 더더욱 즐겁다.

영화 자체의 즐거움에 더하여 서로에게서 공감의 기쁨을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즐거움을 뜨겁게 찾는 모임이 바로 교보증권(대학) 연극영화과이다.

44명의 사내 최대 동아리로서 모임때마다 절묘하게 50:50의 남녀 구성비를
맞추게 되는 현상 또한 보통의 즐거움이 아니다.

그동안 감상및 토론회를 거친 작품으로는 영화 "더록" "어퓨굿맨"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뮤지컬 "겨울나그네" "브로드웨이 42번가",
마당놀이 "황진이", 그밖에 "볼쇼이 아이스 쇼" 등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한 감동과 기쁨을 준 것은 자칭 "여우와 나무
(여자배우와 남자배우)"내지 "영사모"(영화사랑 모임)의 면면이다.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캐릭터들이 모임때마다
엉뚱한 스타를 탄생시키며 신선한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자기자신이 이미 한편의 영화이기 때문에 더이상 영화 볼 필요가 없다는
박모과장, 악역이란 못할 성실의 화신 이모대리, 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
못차리는 최둘리, 5천냥짜리 상품 때문에 팔 부러진 눈물의 여왕 강모양,
그의 에스코드맨 영국신사 윤모군, 메릴스트립을 닮은 대모 김모언니,
3년래 1백% 참석하면서 언제나 아웃사이더처럼 구는 터프가이 임모대리.

그리고 중국영화팬 이모순, 뮤지컬 볼때만 나타나는 신모양, 질투가
매력인 모성숙, 늦게 들어와 온몸을 흔들어대는 장모양, 배우라고는
최진실밖에 모르는 이모군, 남모르는 것만 아는 김모대리, 나를 우상이라고
울부짖는 어깨 3인방, 그리고 여기에 자기 이름 빠졌다고 머리띠 두르고
시위할 삐침이들....

어쩌면 우리는 영화를 빙자해 이런 서로의 만남을 즐거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증권회사는 그 어느곳 보다도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며 치열함을 요구하는
업무현장이다.

그곳에서의 스트레스와 중압감을 능히 이겨내는 지혜로 교보의 영사모는
벌써부터 다음달 모임을 봄내음만큼이나 기다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