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성취했다고 느끼고 있을때 위험은 소리없이 다가온다.

꿀벌이 수십리 먼길을 날아 꿀을 물어 올때도 막상 자기벌통이 보이면
기진맥진해 떨어져 죽는 경우가 많다는 곤충학자의 관찰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소득 만불고지 점령, OECD 가입, 일시적 국제수지 흑자 등으로 마치
선진국이 된 것으로 경제적 성공을 거둔 것으로 착각했던 우리는 한때
목표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사회 어느부분 어느계층 할것없이 방종과
오만에 가득차 있었다.

국제수지 적자와 외환위기는 우리 모두의 방탕에 대한 업보이며 IMF의
고통과 시련은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형벌인 것이다.

IMF 한파로 이제 우리는 개인이나 기업,모두가 생존을 위한 절박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경기는 바닥이 어디인지 침잠만 계속하고, 기업도산이 줄을 잇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빚을 진 사람들에겐 고금리의 압박이 차라리 공포다.

기존의 모든 안정과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만물에는 무릇 양면성이 있듯이 IMF가 끼친 영향 역시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IMF 사태가 우리사회에 많은 순기능을 하고 있음을
여기저기에서 볼수 있다.

당장 우리주위에서 느껴지는 것으로 사치와 낭비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정상적인 상황하에서는 전혀 불가능했던 일이다.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준 또하나 소중한 선물은 방향감각의 회복.

우리의 진정한 현실은 무엇인지 온 국민이 헤쳐가야 할 공동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자각케 됐다는 것이다.

목표가 분명할때 의욕이 솟고 결의에 찬다.

전 구성원의 역량이 한곳으로 집결되는 것이다.

고통은 어쩔수 없이 따르게 마련이다.

전지된 나무가 곧게 자라고 솎아낸 과일나무에 탐스런 열매가 맺는 법이다.

제2의 한강의 기적, 강한 선진국 한국을 세계에 증명해야 할 중대한 과제가
우리에게 이제 다시 주어졌다.

이것이 바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한국민의 저력일게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