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했고, 마침내 벼랑에 매달려서
국제금융기관에 손을 내밀었다.

96년말 가용 외환이 2백94억2천만달러였는데 97년11월말 72억6천만달러로
격감했기 때문에 당장에 모라토리엄(상환유예)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계속적인 실수로 대외신용이 추락하여 외국인 투자자가 등을 돌려 환율이
폭등하자 이를 안정시키겠다고 섣불리 가용 외화를 팔아 9월말 2백24억4천만
달러이던 것이 두달 사이에 거의 바닥난 것이다.

벼랑끝에 몰려 국제금융기구에 구조의 손을 내밀자 그들은 몸을 가볍게
하라며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내밀고 준엄한 구조개선을 요구했다.

때마침 정권교체기에 있는 우리는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하면서도 대통령
당선자측과 정부책임자가 함께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모든 문제를
실무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의 기쁨을 맛볼 여유도
없이 당장 국민 기업 정부가 합심하여 벼랑을 기어오르는데 힘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IMF 총재가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고 떠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정부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한국경제의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보인 것도 이런 분위기가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이와함께 외국인의 주식투자가 늘어 주가가 수직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IMF 프로그램의 성과를 대변하거나 우리 경제가 위기를
넘겼다고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정작 살을 깎는 아픔을 감당할 구조개선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며 경쟁력
회복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IMF 프로그램은 외환위기 탈출을 위한 단기계획일 뿐 우리경제의 모든
과제를 담은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의 중요한 일부일 뿐이다.

둘째로 그 프로그램을 실천하는 사람은 IMF가 아니고 우리들이며, 우리가
해야할 또 다른 충분조건의 일부와 상충되어서는 안된다는 한계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당면과제를 다른 나라와 같은 척도에서
관찰하여 필요이상의 부담을 주거나,장기적인 외채상환에 필요한 금융비용
부담을 가중시켜 대외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문제도 있다.

IMF 프로그램은 외국 투자자의 신뢰회복에 목적을 둔 단기대책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몸집을 가볍게 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채권자들은 오직 투자수익의 안정성만을 위해 금리를 터무니 없이
높여 정작 갚아야할 원리금의 부담을 크게 늘려 짐을 더 무겁게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 첫번째의 문제이다.

그동안 우리의 총외채에 대한 평균 이자율이 96년에 4.5%이던 것이
97년에는 6.0%로 갑자기 높아진 것이 최근의 높은 이자부담 때문인데
12월 한달의 영향이 그러하다면 98년에는 얼마나 높아질 것인지
짐작할만하다.

지금 우리의 신용평가등급이 트리플 C로 크게 하락하여 기준금리인 리보에
위험부담으로 가산하는 것이 높아진데다 여기에 수수료 명목으로 터무니
없이 많은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리보+0.25%이면 되는 것을 우리에게는 최고 3백~4백 BP
(3~4%포인트)나 더 받는다는 것이 국제 금융담당자의 말이다.

최근에 민간 금융기관들은 장기채의 경우 12%까지 요구하여 97년
평균부담률의 두 배가 넘는다.

만일 이러한 금리들을 IMF사태 직전인 97년 11월말의 외채총액
1천5백69억달러에 적용해보면 96년 수준에서는 70억6천만달러이며, 97년
평균수준으로는 94억1천만달러로 이 보다 24억5천만달러(33.3%)가 더
증가하는데, 98년에 최고 12%를 내는 것으로 계산하면 1백88억달러로
늘어난다.

지난 13일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푸어스와 무디스의 실무자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조정하기 위하여 실태조사를 하였는데, 트리풀 C보다
얼마나 높여줄지는 미지수이다.

지난날 누적된 실수로 우리의 신용등급이 도산위기의 단계에 있는 최하위
등급인 트리플C로 낮추었지만 이제는 노-사-정이 합심하여 경제회복에
진력하려 하므로 한국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신용등급을 개선해주어야
마땅하다.

만일 이번에 신용등급을 수정하지 않고 최고금리를 적용한다면 우리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해외국채발행도 그 시기를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IMF 프로그램은 채무의 연장만 생각하고 우리가 벌어서 갚아야
하는 상환계획이 고려되고 있지 않다면 문제가 된다.

국제수지가 흑자로 전환하면 그만큼 상환할 여력이 있는 것인데
국제수지의 흑자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외채의 금융비용만큼 무역수지나 다른 무역외수지에서 더 벌어야 하므로
항목별 변동을 예측 계획하고 그에 합당한 거시정책을 마련하도록 조절해야
한다.

실제로 97년 이자부담액이 95억달러인데 투자수익은 54억달러로
투자수지적자액이 41억달러로 전년의 25억달러보다 적자가 무려 64.0%나
높아졌다.

앞으로는 최근의 최고금리 12%를 포함하여 가중평균한다면 이자부담액이
95억달러보다 몇배 더 늘어날지 모를 형편인데 반하여 투자수익은 크게
늘어날수 없는 형편이므로 투자수지 적자가 얼마나 될지 정확히 추정할 수
없으나 적어도 41억달러의 2~3배가 된다면 1백억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

정책당국은 총외채의 이자부담과 해외자산의 투자수익을 정확히 산정하여
우리의 투자수지 적자를 포함한 경상수지 개선에 필요한 정책방향을 선택하고
이를 IMF 프로그램과 조율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