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사람이면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두가지 상상못할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웬만한 가정이면 자가용차가 약방의 감초처럼 되었고, 도시의 거리나
주택가엔 차가 즐비하고, 비행기를 타고 해외나들이 하는 것을 이웃고장
드나들듯 한 것이 첫째다.

이것은 전후에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겐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그것은 결코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집요하고 꾸준하게 쌓아올리다
보니 전후의 수준에선 엄두도 못낸 일까지 해낸 피와 땀의 결과였다.

세계 11위의 공업국으로, 지나치긴 했지만, 가슴을 펴고 오대양 육대주를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경제신화가 그처럼 허망하게, 그것도 단기간에 무너져내릴 수
있는가 하는 점도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동안에도 경기침체나 위기는 간간 있었지만 나라경제가 온통
파산지경으로 맥없이 치몰하는 것은 흡사 남산 외인아파트 철거때 폭삭
주저앉게 만든 인위적 폭파장면을 연상케 한다.

이래서 성장은 고속이었고 붕괴는 초고속이란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올해 있었던 한보사태, 기아사태, 중소기업과 대기업들의 연쇄부도,
금융위기, 외환위기 등은 이제 우리 실생활에 피부 깊숙히 파고들고 있다.

참담한 생활전선이 어느 방어선까지 후퇴할지 모른다.

이와같은 고통은 우리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도 겪고
있다.

한국의 충격이 그들보다 더한 것은 우리의 빌딩이 더 높기 때문이다.

후꾸야마는 "역사의 종언"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에 더이상의 국제분쟁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서구의 가치체계를 받들라는 말과도 같다.

한편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이데올로기대신 문명권끼리의 분쟁이
야기될 것이라고 했다.

어떤 편에 서건 아시아적 시스팀이 일본까지를 포함하여 위기에 처한
것이다.

위기극복은 스스로의 몫이다.

새 시스팀 확립에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

쓴약만이 병을 고칠 수 있다.

새해를 앞두고 이런 각오를 다져야만 또 하나의 상상하기 어려운 기적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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