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이고 소설은 현재의 이야기다.

역사는 실제로 존재했던 소설이고 소설은 존재할수 있는 역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설을 인간의 거울이자 사회의 거울이라고 흔히
말한다.

인간 심성의 움직임이나 사회의 변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이 주는 즐겁고 유익한 재미를 남달리 누리게 된다.

소설을 읽는 재미가 어느 정도인지를 극적으로 말해주는 한 일화가 있다.

에드거 윌리스라는 작가에게 어느날 한 친구가 찾아와 하소연을 했다.

"윌리스, 며칠전 자네의 소설을 읽었네.

어떻게나 재미 있었는지 밤새워 읽었어.

다음날 직장에 나가는 것까지 잊어버릴 정도였다구.

그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윌리스는 대답했다.

"거 안됐군.

너무나 재미 있어 필시 직장에서 쫓겨난 일까지도 잊을는지 모르겠네"

소설은 그것이 지닌 재미라는 속성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일을
잊고 독서 삼매경에 빠지게 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널리 읽히게 된다.

그래서 소설은 언제나 출판물의 베스트셀러에 끼이게 된다.

그동안 가장 많은 부수가 팔린 소설은 재클린 수잔(1921~74)의
"인형의 계곡"(1966년 3월 초판 발행)으로 지금까지 3천만부 가까이
판매되었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서"의 판매부수에는 엄청나게 뒤지는 것이지만
소설이 다른 분야의 책들보다 널리 읽히는 경향은 변치 않아왔다.

한국 출판계에서도 그러한 추세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올 한햇동안에 소설책의 판매가 처지고 처세서가 인기를 끄는
기현상이 벌어졌다는 소식이다.

특히 다른 해와는 달리 처세서가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니 출판문화의
장래에 어두운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IMF시대 도래의 전조를 예감해온 독서경향의 변화였을까.

어떻든 취업난과 실업을 우려한 사람들의 처세서 선호현상이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게 한다.

처세서가 인간과 사회의 거울이 되는 시대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경제난국을 헤쳐나가는 지혜는 처세로 호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