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에 대한 각계각층의 주문도 많고 기대도 크다.

50여년만에 선거에 의한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국가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으니
그럴수밖에 없다.

더구나 차기 대통령으로 뽑힌 김대중 당선자의 경우 오랜 세월 야당에
몸담아오면서 고난의 역정을 걸어온 정치인이기에 더욱 국민들의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듯 싶다.

국민들이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고 국민통합을 이뤄주도록 대통령당선자에게
맨 먼저 요구하는 것도 그래서다.

"한의 정치"가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고, 밀실행정 측근정치가 돼서는
곤란하며, 공정한 인사를 통해 국민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주문도 같은
맥락이다.

거품같은 인기를 의식하거나 자만에 빠질 위험을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늘상 보아온 권력의 속성이기에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것들이 대통령당선자가 유념해야할 일들이다.

물론 급한 것은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리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당장 경제외교의 전면에 나서야 하고 국제적 신인도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은 결코 미래에 해야할 일이 아니라 코앞에 닥친
당면과제이다.

당선자에게 지워진 짐과 국민적 기대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국민들의 단합과 협력이 절실하다.

불신과 냉소주의를 불식시키고 신뢰와 참여의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여기에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국민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리더십은 지도자뿐아니라 국민들이 함께
만들어주는 것이다.

국민들은 일상생활이 편안하다고 느낄때 지도자의 결정을 믿고 따를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한낱 국가의 보스에 불과할
뿐이다.

원로 언론인 홍사중씨가 그의 저서 "리더와 보스"에서 지적한 양자간의
차이점을 보면 그런 관계가 명백해진다.

"보스는 사람들을 몰고 가지만 지도자는 그들을 이끌고 간다.

보스는 겁을 주지만 지도자는 희망을 준다.

보스는 등뒤에서 일하지만 지도자는 공개적으로 일한다.

보스는 자기 눈으로만 세상을 본다.

그러나 지도자는 대중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보스에게는 귀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듣기좋은 말만을 듣는 귀 하나만을 가지고 있다.

반면 지도자는 귀가 여러개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도자는 국정을 공정하고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집행해야만 믿음을 얻을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비범한 신통력을 갖춰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일을 건전한 상식에 근거해 판단하고 실기하지 않도록 처결하면
그만이다.

상식적 판단은 예측가능성을 높여주고 따라서 불안감을 없애준다.

국민들이 편안함을 얻으면 의사통합이 이뤄지고 그에 대한 적응력도
높아진다.

나아가 자발적 참여가 가능해진다.

사실 김영삼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느껴온 불안감은 그러한 국정의
돌출성에 원인이 있었다.

깜짝쇼로 지칭되는 개혁조치들이 너무 많았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의구심은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다.

특히 경제에 있어서 그러한 효과는 거의 절대적이다.

모든 경제주체들은 미래를 대비해 자신의 행동양태를 결정한다.

기업경영이 그렇고 개인의 소비생활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예측 가능한 정책이 일관성있게 추진돼야
할 것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외환위기극복도 예외는 아니다.

외국정부와 금융기관, 그리고 투자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급선무다.

국민들은 결코 비범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만은 아니다.

공과 사를 분명히 가리고 나라를 위해 헌신할수 있는 겸허하고 성실한
지도자를 원한다.

나라 일을 함께 걱정하고 함께 웃을수있는 편안한 지도자를 바라고 있다.

혹자는 국가부도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무슨 한가한 소리냐는 핀잔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급한 상황일수록 원칙에 입각한 해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대책없이 서두르거나 허둥대지 말아야 한다.

취임이라는 형식과 절차는 남아있지만 그에 상관없이 국민들이 의지하고
기대하는 국정의 중심축은 이미 대통령당선자에게 옮겨져 있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대통령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수 있는
규칙 6가지를 제시한바 있다.

그 첫번째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질문하는 것이라고 했다.

선거전의 공약사항이 무엇이었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우리 현실에 맞아떨어지는 충고같다.

관심을 분산하지 말 것, 확실한 것에 내기를 걸지 말 것, 사소한 일까지
깊이 관여하지 말 것, 행정부내에 친구를 두지 말 것 등도 그가 지적한
규칙들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한 여섯번째의 규칙은 실제로 트루먼이 대통령당선자
케네디에게 해준 충고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대통령에 당선되고나서는 더이상 캠페인은 그만 두시오"

인기를 얻는데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 역시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