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같으면 끝까지 분석을 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려보겠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내가 그것을 사랑이라고 느끼면 되는 거지.

젊은 아이가 70고령의 노인을 그만큼 끔찍이 사랑해주면 되는 거지 뭘
더 가릴 것이 있겠는가?

그는 노인다운 너그러움으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녀의
키스세례를 음미한다.

시골 장모님에게 5천만원짜리 아파트도 장만해주었고, 어느날 자기가
갑자기 죽어도 미화가 먹고살 수 있도록 조그마한 케이크집도 한개 황미화
이름으로 등기해 주었다.

그는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미화에게만 암시주면서 해치웠다.

영감님이 병이 나도 단단히 났다.

이제 그는 미화 없이는 하루도 재미가 없어서 못 산다.

미화가 어찌나 영특한 계집아이인지 옛날 서울에 처음 와서 한달동안
일했던 목욕탕에 찾아가서 물리치료를 겸한 마사지를 배워다가 김치수가
오기만 하면 업드려놓고 갖은 재롱을 다 부렸다.

두들기고 문지르고 뽀뽀를 해가면서 정성으로 모셨다.

진정 진시황제가 부럽지 않다.

어떡하다 요런 귀염둥이 복덩어리가 자기에게 소개되었을까? 그는 미화를
안을 때마다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미화가 그를 업드려 놓고 엉덩이 위에 올라타서 올리브유를 바르면서
마사지를 할 때 그는 솟구쳐오르는 보물대감을 어쩌지 못 하고 목욕탕
속에서 동침을 하기에 이른다.

"회장님, 그 황구렁이가 효험을 나타내는구먼요. 이번에는 백사를
잡아올리라고 했어요. 나는 증말 회장님이 힘차게 나를 안으면 살 것
같아유. 이렇곰 좋을 때가 어디 있어유"

정신이 아찔아찔한 김치수는 그대로 그녀를 꽉 끌어안고 젊었을 때처럼
폭발하는데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좋은 순간이 또 어디 있을까보냐고 소리를
지른다.

"워매 좋은거, 워매 좋은거. 나는 회장님 것 이어유. 회장님은 제 것
이지유? 저는 회장님의 것으로 영원히 살고 싶구먼유. 회장님, 제가 40살
될때 까지만 사셔유. 내 청춘을 홀랑 회장님을 위해서 바칠 것인께.
워매 좋은거, 워매 좋은거"

"미화야, 급히 백사를 잡아 올리도록 해라. 알았냐? 나도 이렇곰 좋은 것은
처음이다"

"워매 좋은거, 워매 좋은거. 회장님, 나는 그만 오장육부가 녹아나네유"

그녀는 김치수의 몸 밑에서 지렁이처럼 더욱 오므리면서 금세 죽을 것
같은 신음소리를 낸다.

"얘야, 왜 그러냐?"

김치수는 걱정을 하면서 묻는다.

"지 걱정일랑은 마셔유. 저는요, 요렇곰 좋은 거는 처음잉께. 꼭 죽을 것
같구먼유. 워매 좋은거, 나 죽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