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인들의 심정은 답답하기만 하다.

한달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경제여건이 급속히 악화됐고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자금지원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그동안 부도의 무풍지대였던 은행 종금 증권사등 금융업체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대부분 직장인들은 정리해고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사회문제로까지 부각됐던 명예퇴직은 그나마 행복한 경우다.

퇴직금은 물론 거액의 특별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여건이 악화될 경우
특별보너스는 커녕 퇴직금도 챙기기 어려울지 모르는 상황이다.

매일 불안한 생활속에 직장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취미생활이다.

장기간 경기침체속에 경제적 부담이 큰 취미생활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취미생활은 직장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계기이기 때문에 "마니아"들은 늘어나고
있다.

서울증권 기획부에 근무하는 고정진 대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여행 마니아"
다.

특히 오지탐험에는 남다른 열의와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티베트 중국 네팔 히말라야등지의 오지를 다녀온 것도 수차례에 이른다.

고산지역이어서 산소결핍증에 걸려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고 현지에서
슈퍼벼룩을 만나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돼 귀국한 적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여행하는 시간만큼은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난 9월에는 정기휴가에 월차까지 몽땅 모아 2주일의 휴가를 만들어 냈다.

중국 하북성 일대를 누비며 수개월간 쌓였던 묵은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다.

고대리는 "앞으로 1년이상 코스를 잡아 실크로드 전체를 여행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남미의 고대문명지역도 탐사하고 싶지만 경제여건이 워낙 나빠져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S그룹에 다닌지 5년째인 민모 대리는 "오토바이 마니아"로 사내외에 유명
하다.

그가 갖고 있는 오토바이는 "할리 데이비슨"이 전용으로 쓰는 경찰오토바이
와 같은 기종이다.

배기음소리가 마치 인디언의 북치는 소리처럼 들리고 최고속도 2백20km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품질의 오토바이로 알려져 있다.

민대리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주말이다.

서울근교의 경춘가도나 지방을 순회하며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대리가 폭주족 출신은 아니다.

직장에 취직한 후 오토바이를 처음 타게 됐다.

민대리는 "보통 가죽점퍼에 헬멧을 착용하고 오토바이를 타기 때문에
경찰로 오인해 자가용운전자들이 과속을 하다가 속도를 줄이기도 합니다.
사실 온몸으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어 일면 폭주족이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다만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되겠지요"하고 말한다.

중소기업인 N사에 근무하는 김원길 과장은 프로 산악인이다.

대학때부터 산악반에서 동아리 활동을 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친구들과 만나 산악등반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킬리만자로 등반에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등정 막바지 고산지역에서 소주를 2잔을 마셨던게 치명적이었다.

다음날 갑작스레 고산병증세가 나타나 등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과 싸우는 과정은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이러한 마니아들이 늘어나면서 술잔을 기울이며 휴식도 함께 하는 레포츠
카페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레포츠카페는 레포츠기구와 사진 서적 비디오 등을 갖춘 이색카페다.

오토바이카페 스킨스쿠버카페 산악카페 등이 생겨나 취미를 즐기는 마니아들
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서울 한남동의 "할리"와 압구정동의 "네버랜드" 등은 할리 데이비슨
사진과 비디오 등을 비치했고 오토바이 마니아들의 모임터로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또 성동구 사근동 한양대앞에는 산악인들이 자주 찾는 "드뷔시산장"이 있다.

등산화와 자일 벽난로 등산복등을 배치해 산악인들의 포근한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 김남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