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에도 김영삼 대통령주재의 비상경제대책회의와 임창열 부총리가 소집한
은행장회의가 열렸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지혜를 모으기 위한 회의가 잇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잇따른 회의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상황은 뚜렷한 개선기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두차례 회의에서 쉽게 풀수 있는 일이라면 이런 상황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할지 모르나, 좀더 내용을 뜯어보면 이 시점에 와서도 매듭을 푸는
방법이 도무지 수준이하인 듯한 감이 오히려 짙다.

거의 전금융기관이 돈가뭄에 헤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국민은 주택은행 등
일부 국책은행과 선발 종금사 일부는 오히려 여유자금을 돌릴 길이 없어
고민중이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도대체 재경원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재경원 지시로 부실 종금사에 콜자금을 빌려줬다가 그 종금사가
업무정지되는 바람에 돈을 떼일 형편이 됐으나, 아무런 대책도 취해주지
않는 재경원에 대한 불신조차 짙어 더욱 꼬이고만 있는게 금융시장이다.

신용공황이라고들 하지만, 정부와 금융기관간의 믿음에서 조차 문제가
일고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바로 이런 상황을 감안, 우리는 대통령긴급명령 발동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일정기간동안 금융기관간 자금거래에 대해서는 정부가 그 지급을
보증하고, 은행의 위험자산에 대한 자기자본비율 8%(BIS기준)충족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수 있는 내용의 긴급명령이 긴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전금융기관에서 거의 올스톱상태인 DA(연지급어음)매입활성화,
기존시설자금상환연기 등의 포함여부도 검토해볼만 하다.

은행들이 종금사나 증권 투신사에 대한콜자금 지원을 기피하는 등
금융기관간에도 돈이 돌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는 콜자금을 정부가 지급보증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재정에서
부담해야할 자금규모는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미 금융기관 예금원리금에 대해 3년간 전액을 보장키로 했기 때문에
따지고보면 이를 앞당겨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볼수도 있다.

이미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한 현물출자는 정부방침으로 결정됐지만,
다른 은행의 경우에서도 결산기일을 앞두고 BIS기준 때문에 신규대출을
기피하는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유가증권 등 출자가능한 정부보유 현물에 여유가 어느 정도 있는지 알수
없으나 긴급명령을 발동한다면 재원을 확보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종금사 정리절차를 서두르면서 살아남을 곳에 대해서는 자금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상황이 급박한 만큼 대응조치는 과감한 결단을 필요로 한다.

관계 당국자들이 아직도 평상시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대책회의가
원론적인 말로 일관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타성화된 생각과 지나치게 책임을 의식하게 마련인 정권말기의 소극적인
행동으로는 오늘의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