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은행들은 1만원의 자산을 굴려서 26원을 벌었다
(총자산이익률 : ROA 0.2 6%).

반면 외국은행 국내지점들은 1백53원의 이익을 냈다(ROA 1.5 3%).

똑같은 돈으로 똑같은 국내고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했지만 국내 은행들은
외국은행의 6분1밖에 이익을 내지 못했다.

이같은 현상은 올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 상반기 장사에서 25개 일반은행은 7백7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연말 결산때는 기아 한라 대농 진로등 대기업들의 무더기 부도로
손실규모는 더욱 늘어나 대부분 은행이 적자결산을 하게될 지경에 처해
있다.

반면 외은지점들은 상반기 1천6백96억원의 이익을 낸데 이어 연말흑자
규모가 5천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같은 결과가 초래된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은행들의 생산성이 외은지점들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인원이 많고, 이익개념은 희박한 상태며, 정확한 심사능력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출을 일삼아 왔던 탓이다.

한마디로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에 얽매여 거품성장을 즐겨온
까닭이다.

우선 인원과 점포가 너무 많다.

지난해 국내은행들의 직원1인당 순이익은 7천4백만원에 불과했다.

반면 외은지점 직원들은 1인당 1억4천2백만원의 이익을 냈다.

똑같은 일을 하고 직원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외국은행의 절반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 은행점포에 가보면 일없이 우두커니 서있는 직원이 너무 많음을
쉽게 발견할수 있다.

눈코뜰새없이 자기일에 매달려있는 외국은행과는 천양지차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시내 지점장으로 발령나 갔더니 지점직원이
41명에 달했다.

그러나 막상 두고 보니 월말등 바쁠때를 제외하고는 이만한 인원이
필요없더라.

그래서 6개월만에 27명으로 줄였으나 업무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점포도 그렇다.

지난해말 현재 25개 일반은행의 점포수는 5천1백5개.

인구 68만명당 1개꼴이다.

이중 4분의1정도는 이익을 한푼도 내지 못하는 적자점포다.

금융기관에서 거품이 가장 많이 끼어있는 부분이 바로 여신이다.

금융기관은 가능한한 높은 금리를 받고 고객에게 대출해줘야 돈을 벌수
있다.

그러나 거래업체가 부도를 내 돈을 떼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따라서 과학적인 심사를 바탕으로 떼이지 않을 업체에 돈을 빌려줘야
하는건 기본이다.

그러나 국내금융기관들은 이와는 달랐다.

아무리 허술한 기업체라도 정치권이나 은행장의 말한마디면 수백억원의
돈을 빌릴수 있었다.

심사고 담보고 따질게 없었다.

그 결과가 바로 엄청난 부실여신의 양상이다.

지난 9월말 현재 6개월이상 이자를 한푼도 받지 못하는 은행들의
부실여신은 28조5천억원으로 총여신(4백53조3천억원)의 6.3%에 달하고
있을 정도다.

이같은 엄청난 부실여신은 결국 금융위기를 불러왔고 이는 다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연결됐다는건 이미 아는 사실이다.

은행등 금융기관들의 거품신화는 이제 존망의 기로에 처해있다.

당장 부실한 금융기관은 폐쇄하라는게 IMF의 요구다.

이는 상당부분 그동안 생산성과 수익성을 도외시한채 무사안일한 자세를
보여왔던 금융기관 자체의 책임이다.

"거품을 얼마나 빨리 제거할수 있느냐"가 이제 은행등 금융기관의 존망을
판가름할 잣대가 된 시대가 도래했다.

< 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