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지원조건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사항의
윤곽이 잡혀졌다.

부실금융기관 정리와 금융시장개방 등을 둘러싸고 정부와 IMF간의 막판
조율이 진통을 겪기는 했지만 잠정합의된 내용은 부실금융기관을 조속히
정리하고 경제성장률을 대폭 낮추기로 했다.

또 재정긴축과 경상수지적자축소를 강력히 추진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조건에 대해 IMF가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부도의 위기사태를 맞아 긴급자금지원을 요청한 마당에
그 당위성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앞으로 전개될 예측불허의 상황을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극복해내기 위해 모든 경제주체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숙고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사실 지금까지 경제가 어렵다고는 했지만 국민들의 체감수준으로 보면
그다지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다르다.

종래의 판단기준으로는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 예상된다.

당장 실업자가 늘고 임금동결이 불가피하다는 것만으로도 생활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나타나고 있듯이 당분간 물가급등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도 서민
가계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선 모든 경제주체들은 고통을 감내하려는 의지를 보다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이같은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IMF의 신탁통치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위기경제를 회생시키는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본다.

IMF에 합의해준 조건은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줘야 하며 특히 경제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해서는 안된다.

특히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돼 있는 부실금융기관 정리문제는 자칫 잘못될
경우 경제위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예컨대 IMF가 요구하고 있는 종합금융회사의 처리가 기업의 자금난과
금리폭등, 나아가 예금인출 사태 등으로 연결될 경우 그에 따른 기업도산과
금융불안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가경제가 회생불능의 사태로까지 확산될 우려도 없지 않다.

따라서 정부는 부실금융기관정리등 IMF와의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투명한 기준을 정하고 공개적인 절차에 따라 집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해둔다.

또한 확정된 시책의 구체적인 집행은 될수록 신속히 추진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우리는 근래에 IMF의 지원을 받은 나라들이 모두 경제의 구조조정에
성공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정부의 대처능력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이 정권교체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치권도 정부 못지 않게 많은
책임을 느끼고 위기극복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임을 아울러 강조해 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