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는 너무 예쁘시고 고상하셔요"

"이 사람은 내 딸이고 우리 회사의 상무이사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김이사님이라고 불러라"

아주 다정한 어투로 김치수가 가르친다.

"알았어유. 김이사님, 제가 뭘 잘 못 하더라도 몰라서 그러려니 하고
예쁘게 봐주세유. 저는 원래 서울이라는 데가 좋기는 한데 나하고는
너무나 하늘과 땅같이 느껴져요. 이렇게 대단하신 어르신네와 마주앉아
식사를 한다는 것이 꿈만 같네요.

황송해유. 잘 가르쳐 주세유. 사실 저도 서울말씨 많이 쓰는데유. 기가
질리면 시골 사투리를 내뱉어유"

"하하하하"

영신이 상냥하게 웃다가, "미화양, 충고할게. 아니 그냥 가르치는 거야.
내뱉는다는 것은 좀 우악스럽고 상스러운 표현이야.

"그런 말씨를 쓴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점잖지. 말씨를 곱게 쓰는 것도
예절교육이니까 책을 많이 읽도록 해"

넌지시 한마디 가르치자 미화는 야성적인 자기 스타일대로 덤빈다.

"알아듣기는 하겠는데유. 우리 촌 가시나들은 말하는 것까지 신경쓰면
거북해서 못 놀아유"

"여기는 친구끼리 노는 장소가 아니고 회장님을 모시는 자리잖니?
너에게는 아르바이트지만 퍽 페이가 많은 포스트니까 거기에 맞는 예절이
필요한 거다"

"죄송해유"

그러자 김치수가 예의 그 멋진 미소를 듬뿍 보내며 미화를 편들어준다.

"내가 원하는 수행비서는 예의 바르고 머리 좋고 날씬하고 공부 많이한
여성이 아니라 미화같은 시골처녀니까 안심하고 네 스타일대로 해라.
영신아, 내가 전라도 깡촌 출신인 것을 알지? 어쩌면 어릴적 고향에서 듣던
그런 소박한 말투와 인정이 그리워서 내가 미화양을 채용한 것인지 모르니까
그냥 자기 편한대로 놔두렴"

영신은 자기가 아버지의 사랑 서열 1위에서 미화에게 밀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자리를 편하게 유도한다.

"미안해요. 나는 아버지의 의도를 모르고 그렇게 말한 거니까 미스 황이
양해해요"

"아이구 김이사님요. 양해라고 까지 말씀하시면 제가 미안하구먼요.
저는요,김이사님을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준 은인으로 일생동안 못 잊을
겁니다.

을마나 지가 이 자리를 잘 지킬지 모르지만 한달에 백만원이면 너무
과남하구 말구요.

회장님, 김이사님 증말로 고맙구먼요.

지가 좀 모자라고 부족하더라도 잘 봐주시요"

그녀는 고개까지 숙이면서 진정 고마워한다.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오동통해 육감적인 아가씨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