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겪고 있는 금융위기는 경제의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따라 경제위기에도 국경이 있을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침에 남미에서 발생한 외채 위기가 한나절도 못돼 아시아지역에 파급
되고, 개도국에서 시작된 통화위기가 거의 실시간(real time)으로 선진국에
불안을 전염시키는 것이 "경제 1일영향권"에 살고 있는 현재의 지구촌 모습
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때 지금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일본 등이 겪고 있는
금융위기는 당사국만의 문제도, 또 아시아지역의 문제만도 아닌 전세계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위기해결을 위해서는 전세계가 공동으로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지난 26일 폐막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는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해 구체적인 지원방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선언적 처방을
내리는데 그쳤다.

하지만 세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EU국가들을 협력
체제에 참여시키기로 한 것은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해 세계 주요국들이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실 아시아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과 책임을 묻는다면 서방 선진국이라
하여 자유로울 수 없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위기도 이번 APEC회의에서 지적됐듯이 국제환투기
등의 "외풍"에 희생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위기의 책임문제는 젖혀둔다 하더라도 아시아 통화위기가 국제금융시장에
몰고 올 파장을 생각한다면 당사국이 아니라 하여 강건너 불구경하듯 할
일이 아니다.

만약 일본의 금융위기가 심화돼 일본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3천2백억달러
에 이르는 미국 재무부 채권을 매각할 경우 어떻게 되겠는가.

세계경제전체에 파국을 가져올 대재앙이 될 것이라는 르몽드지의 전망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때문에 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유기적인 국제공조체제에 의해 조기 수습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IMF와 같은 전문 국제기관이 있긴 하지만 오늘날의 동시다발적인
금융위기를 해결하자면 IMF 힘만으로는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만 하더라도 각각 1백72억달러와 3백30억달러의 국제
지원을 받기로 돼있지만 그중 IMF의 지원은 각각 52억달러와 1백억달러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일본 미국 호주 싱가포르 한국 등이 지원하게 돼있다.

우리정부도 너무 IMF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다른 국제 금융기관이나 개별국가의 지원을 얻는 데도 신경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정부는 IMF에 요청한 2백억달러만 있으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위기의 심각성에 비해 어림도 없는 액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임에
비추어 더욱 그렇다.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IMF의 금융지원을 보완하여 각국의 금융위기
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보다 광범위한 국제공조체제가 확고히 자리잡길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