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에 난데없이 마녀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극장 "마녀"가 개관되었고 여성소식지 "마녀"도 창간되어 배포되고 있다.

콘서트 "마녀와 친구들"도 공연될 예정이라고 한다.

마녀사냥은 중세에 그야말로 미신적 집념으로 여성들을 학살한
광풍이었으며 지금도 얼토당토 않은 집단적 핍박행위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런 마녀가 리바이벌하고 있다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1484년 교황 이노센트8세는 독일인 마녀사냥꾼 2명의 마법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교서를 발표, 그들에게 독일 전역에서 마녀들을 추적할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이것이 마녀사냥이라는 광풍을 일으켰다.

2년후 그들은 마녀사냥 백과사전 "사악한 저주"를 발간했다.

여기에는 각종의 마법과 마녀혐의자들을 심문하는 방법까지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두 악당들이 근거없는 마법들을 적어놓은 잡동사니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뒤 1세기동안 마녀사냥꾼들에게 바이블이 되었다.

사람들은 복음을 대하듯 책의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마녀들은 아기를 죽여서 먹고 새나 동물로 변신하고 빗자루나 염소를
타고 하늘을 날며 악마들의 잔치에 참가한다는등 해괴망측한 내용들이었다.

마녀사냥은 종교갈등과도 무관하지 않다.

어느 대주교는 신교도들을 몰아낸후 마녀사냥으로 눈을 돌려 3백68명을
화형시켰다.

마을에 여자라고는 1명밖에 남아있지 않은 곳도 있었다.

7백명 사는 곳에서 2년동안 43명의 여자가 화형당한 곳도 있다.

어떤 농촌에선 너무 많은 마녀들이 화형당해 가족을 한명이라도
잃지않은 집안이 없을 정도였다.

마법에선 남자도 마법사가 될수 있지만 고발된 사람들의 80%이상이
여자였다.

과부나 노처녀들은 남자들의 통제권밖에 있었으며 그녀들은 자신들
맘대로 산다고 하여 남자들이 시기했다.

마녀중엔 산파등 당시로선 여성만의 재능을 갖춘 사람들도 많았다.

마녀사냥의 주요 동기는 여자들의 권리를 줄이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후 부부재산에 대한 여자들의 권리가 약화되었고 여성의 역할도
제한되고 남녀임금차도 커졌다.

한국 여성계 마녀바람의 뜻을 짐작케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