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는 지금 최악의 밑바닥을 헤매고 있다.

치솟는 원화환율과 가속되는 외환위기, 줄줄이 쓰러져가는 대기업의 몰락과
중소기업의 도산 행렬, 헌 종이조각으로 버림받고 있는 증권, 10만명이 넘는
대학 졸업자의 구직행렬 등 이 모든 사태는 분명히 우리 경제가 막대른
골목에 다가선 느낌이다.

세계의 주요 신문들은 마치 때를 만난 듯이 매일같이 한국 경제위기의
실상을 앞다퉈 다루고 있다.

이토록 산업구조가 총체적으로 붕괴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시장경제원리 만을 내세워 속수무책이다.

정권말기 현상으로 정책의 구심력이 탈진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새해에 새정부가 펼쳐나갈 국가적 목표를 뚜렷이
설정하고, 경제 대개혁을 위한 국가의지를 확고히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지구의 모든 나라는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경쟁적으로 정부의
굳은살 빼기 혁명을 단행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이미 공무원 수를 거의 반감했고, 정부기구를 3분의1로
축소하는 등 대혁명을 치렀다.

일본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은 물론 후진국들도 이른바 슬림(slim)계획이라고
불리는 정부혁명을 앞다퉈 단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조치는 다가오는 정보화시대에 대비하여 정부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행정의 정보화와 과학화를 통해 무한경쟁시대에 이길수 있도록
국가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한다는 발상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날의 기능과 조직의 틀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개발
연대를 이끌어 오던 낡은 도그마에 파묻혀 있다.

정부예산은 그야말로 다다익선의 낡은 세월속에 파묻혀온 경직성
구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해 예산규모는 70조원을 넘고 특별회계를 합하면 1백조원에 육박한다.

예산 항목을 놓고 볼때 어느 한곳도 손댈 곳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공무원 수만 하더라도 지난 70년대에는 60만명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은 1백만명을 훨씬 넘어섰다.

또한 정부 주변에는 허다한 국가보조단체와 출연 기관들이 범람하고 있다.

각 부처마다 거느리고 있는 정부출연 기관만 해도 60여개나 된다.

한쪽에서는 지방화 복지화를 부르짖고 있으면서 정부는 중복된 기구,
반복되는 업무, 그리고 낡은 규범과 규제속에서 방만한 운영을 하고 있다.

정부 뿐만이 아니다.

정부 산하의 투자기관도 30개가 넘고 있어 재정자금의 비능률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들 정부투자 회사는 모두 개발 연대의 초창기에 설립된 이래 한번도
개편되지 않고 있다.

이제 이들 기관은 모두 민간기업으로 전환되거나 중복되는 기관은
해체해야 한다.

이토록 팽창되어가는 정부기구와 산하기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는 것 없이 늘어만 가는 재정수요를 막을 길이 없다.

지난날의 낡은 정부기구와 경직된 재정수요를 안은 채 선진사회의 구현은
불가능하다.

정부예산 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예산 이외에도 공공기금, 공무원 연금등 수많은 공제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 등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35개 공공기금 순조성액도
내년에는 1백조원을 넘게 된다.

실제로 조성되는 공공기금 규모가 연간 61조원을 넘고 있어 올해에 비해
28%나 증가하게 된다.

이들 대부분의 자금은 시중은행에 예치되어 있거나 증권투자를 비롯한
머니게임에 투입하는 등 정부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산혁명을 치를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대권이 교체되고 새로운 정부가 탄생되는 이 시점이야 말로 "제로섬"
예산의 대개혁을 단행하는 가장 적기라고 생각된다.

이 호기를 놓치면 우리 정부는 영원히 스스로 첩첩이 쌓은 허구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정부는 지금 스스로 뼈를 깎는 아픔을 치러야 한다.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경제적 필요를 창출해 낼수 있는 잠재능력을 근거로
가능하다.

그리고 이 능력은 새로운 인식체계, 경제하려는 의지, 필요에 대한
믿음이라 하겠다.

연간예산 30% 삭감을 위한 대혁명의 발상이 나와야 한다.

절약된 예산은 중소기업육성, 기술투자지원, 지역개발사업과 SOC투자
등 내일의 고도 산업국가를 여는 새로운 정책수요에 집중적으로 대응해
나갈수 있도록 재편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숨막히는 지구촌 시대의 변혁에 임하여 우리 정치인들도
새로운 각성과 전향적 인식을 토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력의 전부를
재투자해야 할 때다.

새출발을 위한 새로운 준비에 전력투구함으로써 변혁의 방향 제시를
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