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환보유고가 적정수준 이하로 내려왔다고 야단이다.

이런 속에서 우리정부는 21일 베이징에서 대외경제협력자금(EDCF) 5천4백
만달러를 중국정부에 제공하는 서명식을 갖는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의 금리(5~7%)보다 훨씬
낮은 연리 2%, 10년거치 30년 상환조건이다.

우리정부는 장기저리의 차관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린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그러나 지원하는 입장이면서도 뭔가 개운찮다.

상사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국내 환율급등을 우려하는 소리가
쏟아진다.

상사원들은 중국측 파트너가 "한국의 금융사정이 어려운데 자본금은 제때에
납입할 수 있느냐"고 물을 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고 말한다.

상사원들의 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내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이 1천원대를 넘나드는 판에 무슨 달러를
중국에 지원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외환보유고가 3백억달러를 밑도는 우리가 1천5백억달러에 육박하는 중국에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이런 "여론"에 당국자들은 펄쩍 뛴다.

국내 외환사정이 좋지 않다고 중국에 대한 EDCF 자금지원을 중단할 경우
우리정부가 외환시장의 위기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될 경우 세계 각국은 "한국금융시장이 자생력을 상실했다"고 판단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OECD가입국의 의무를 이행하고 한국기업들의 대중국 수출지원효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라도 어려울 때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당국자의 "대중국 지원논리"를 십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허장성세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달러가 아쉬운 판에 우리가 중국에 장기저리자금 지원을 계속하는 것은
"명분"을 떠나 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국내외 경제현장에서 뛰는 기업인들의 정서를 감안하는 자세를 보고 싶다.

김영근 < 베이징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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