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10일.

달러당 원화환율이 9백97.8원으로 치솟았다.

국내 외환시장 개설이래 사상최대치로 하루만에 무려 18원40전이 오른
것이다.

정부당국이 고시한 "마지노선" 1달러 1천원이 무너진 동시에 금융대란이
비단 멕시코에 국한된 상황만은 아니라는 공포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재정경제원 외환자금과 김정관(29)사무관.그의 전화통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재정경제원은 도대체 뭘하고 있느냐.

재경원을 폭파해 버리겠다"

수백만달러를 베팅하는 외환딜러는 차치하고라도 유학생 자녀에게 달러를
보내야 하는 부모들의 하소연에는 면목이 없다.

우리나라 외환시장규모는 일평균 15억달러 정도.

우리나라처럼 대외교역으로 먹고사는 스몰이코노미체제는 환율이 춤추면
심리적 공황상태가 초래될수 밖에 없다.

환율이 1%만 오르내려도 신문 1면톱감이다.

그런데 2%가 넘는 18원40전이 올랐다.

누구나 "나라가 망한다"고 호들갑을 떨만한 사건이다.

우리나라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되는게 아니냐는
논의도 오르내렸을 정도.

김사무관은 외환시장의 동향을 파악해 환율을 안정시키는게 일이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모니터로 외환수급상황을 체크한다.

시장참여자들의 불안요인을 미리 차단하고 환율변동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환차익을 노리는 외환딜러에게는 끊임없이 당국의 환율안정의지를
주입시킨다.

국제금융시장의 동향이나 경제수지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환율이 당국의 의지대로만 움직이겠는가.

대만환율 폭등, 홍콩주가 폭락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지구촌경제시대
이다.

한시도 자리를 비울수가 없다.

점심은 물론 저녁끼니조차 도시락이나 자장면으로 대신해야 한다.

오후4시30분이면 시장은 폐장하지만 장관에게 제출할 보고서를 포함, 각종
금융동향보고서도 작성해야 한다.

일상업무때는 틈을 낼수가 없기 때문이다.

밤 11시면 쌓인 일을 뒤로한채 퇴근해야 한다.

순전히 내일 출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로선 최근의 치솟는 환율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사실 해법은 간단명료하다.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각이 문제입니다.

우리경제가 튼실하면 외국인투자자가 들러붙게 마련입니다"

사실 변동환율제도아래서 정부의 환율정책은 한계를 가질수 밖에 없다.

기껏해야 외환딜러들의 매입을 자제시키고 외환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전부다.

"주가폭락과 환율폭등은 국가경제의 가시적인 결과물입니다.

원인을 분석하고 처방을 내려야할 때입니다"

한국경제는 금융시스템이나 대기업문제가 얽히고 설켜있다.

금융기관이 부도기업에 대출해 부실채권이 쌓이면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고
환율상승으로 이어진다.

또 기업의 연쇄부도는 외국인투자자를 내몰아 주가하락을 불러올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재벌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마불사.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로 통합니다.

1천만원을 빌리면 꿔준 사람이 큰소리치지만 1천억원을 빌리면 꾼사람이
큰소리를 치게 됩니다"

금융기관은 기업의 덩치를 보고 돈을 빌려주고 재벌은 돈을 더 빌리기
위해 과잉 중복투자를 일삼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물론 자책감이 없을리 없다.

"외환당국의 정책도 표류하고 있습니다.

당국을 믿고 따라와주면 손해가 안나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거든요"

<손성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