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경쟁이 후끈 달아오른 요즘 나는 "오늘은 작년에 신한은행에 원서를
냈던 날이군" "오늘은 면접보던 날인데"하면서 하루하루를 되짚어보곤 한다.

돌이켜보건대 지난해 2학기에 접어들도록 졸업후 갈곳이 결정되지 않아
나는 초조함속에 자괴감까지 들기도 했었다.

그러던중 뜻하지 않게 신한은행에서 서류심사와 필기시험 통과를 알리는
전보가 왔다.

신한은행에 꼭 붙어야겠다는 강렬한 소망과 함께 평생직장으로 삼아야겠다
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그러나 신한은행의 면접은 이미 취업지망생들에게는 까다롭기로 소문나
있던 실정.

완벽한 면접준비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길로 도서관 잡지실로 달려갔다.

최근 몇개월간의 경제잡지 시사지들을 넘기며 신한 은행 금융 개방이란
단어가 들어간 페이지는 모조리 복사했다.

빨간줄을 그으며 읽고 또 읽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PC통신에서도 같은 단어로 검색한 몇개월간의 신문기사를 읽었고 은행의
웹사이트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면접준비를 하며 드디어 맞이한 실무진 면접.

면접생들은 한마디를 하면 "어느 잡지 몇월호군"할 정도로 이미 시사에
밝았었다.

토론을 하며 우리들은 우리나라 은행의 미래와 금융시장의 향후 전개방향
을 마음대로 토론하면서도 서로서로 너무나 똑똑해 보이는 경쟁자들을 의식
해 초긴장상태였다.

평상시 학교수업때 발표와 프리젠테이션을 자주 가졌던게 도움이 됐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 임원면접에서는 쏘는듯한 임원들의 눈빛앞에 준비한 말들도 더듬거리기
일쑤였다.

입사하고 싶다는 마음하나만을 간직한채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나름대론 극적으로 입사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입사했다는게 취업전쟁의 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와의 새로운 전쟁을
의미함을 알게 됐다.

결코 한 두달동안 기사를 검색하듯이 할 수 없는 직장생활이다.

경제적 독립의 뿌듯함과 저축의 보람, 해박하고 유머러스한 다양한 사람
들과의 새로운 교분 등의 즐거움을 누린다.

그러면서도 최초의 각오로 스스로를 다져나간다.

더 멋진 직장생활을 위해.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