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만큼 예로부터 매우 중요시되어 왔다.

어느 학자는 국가의 성립이 식량확보를 위한 집단적 노력체계로부터
연유되었다고도 했다.

이와같이 중요한 식량문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식량을 통상적인 상품으로 볼것인가, 아니면 어려울 때 서로 도와야 하는
자선의 대상물로 보아야 할것인가 하는 논의도 그중의 하나다.

금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후자가 상당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금세기 후반들면서 이러한 주장은 힘을 잃었다.

자국의 기본 식량확보는 교역논리와 별개로 다루어지던 지난 2백년간의
식량안보 논리가 크게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즉 식량안보는 필요한 것이지만 이를 확보하는 수단이 꼭 시장 폐쇄적일
필요는 없으며 개방된 식량시장에서도 적정한 수입과 비축을 통해 식량안보를
성취할수 있다는 수출국들의 논리가 점차 퍼져나가고 있다.

물론 이에 맞서는 수입국들의 통상적인 식량안보 주장도 만만치 않아
20세기 말에 대두된 식량의 상품화 논쟁은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될 것같다.

2백여년 동안 유지되어온 식량관이 이와같이 뒤바뀐 배경은 20세기
세계질서 변동의 부산물인 것으로 보인다.

유럽 열강의 식량을 공급하던 식민지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분리.독립하였고, 세계대전 전후로 식량조달에 시달린 유럽국들은 EC
공동농업정책이라는 연합정책을 마련,유럽대륙을 수입국권에서 수출국권으로
바꿔 놓았다.

이에따라 유럽에 식량을 팔던 과거의 유럽 식민국가들은 판로확보가
중요하게 되었고, 처음부터 먹고사는 농사가 아니라 유럽에 팔기위한
농사로 시작한 이 나라들은 처음부터 식량을 상품 그 자체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식량의 상품화 현상이 거세질수록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높여
무한경쟁에서 이길수 있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