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일의 곡창이라 할 김제군 만경평야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어릴적 벌거숭이로 친구들과 멱을 감던 능재저수지, 넓고 넓은 들판위로
낙조를 드리우던 붉은 태양, 논두렁에서 메뚜기와 개구리를 잡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메뚜기와 개구리는 으뜸가는 간식.

특히 메뚜기를 프라이팬에 볶아 먹는 맛이란.

당시 생활은 어느 집이고 할 것없이 어려웠다.

도시락은 꽁보리밥에 김치가 고작.그럼에도 십리길을 걸어서 통학하다보니
점심은 꿀맛이었다.

가끔 간식으로 싸간 고구마는 또 하나의 별미.

뒷동산으로 가는 소풍때라야 쌀밥에 계란을 싸갈수 있었다.

잘사는 집의 아이는 이때 김밥과 사이다를 싸와 부러움을 받기도 했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사회"는 만경중학교 동창 6명이 만든
모임이다.

만경중 24회 졸업생들이어서 이런 명칭을 따왔다.

서울에 올라와 살다보니 고향이 그리워지고 옛 친구들이 보고 싶기도 해
10년전 모임을 결성했다.

각기 직업과 걷는 길이 다르지만 죽마고우이다보니 만나면 여전히
동심으로 돌아간다.

의리파인 최홍철 대원비철금속사장, 지금도 조기축구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는 영원한 축구선수 반석엽 반석문화사사장, 형님처럼 의젓한 곽규옥
럭키개발차장, 노는데 일가견이 있는 김용모 삼익산업 총무과장, 활달한
성격에 학생회장을 역임한 신용철 케피코차장 등이 멤버다.

모일때의 철칙은 가족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

부인뿐 아니라 자녀들까지 한자리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 꽃을
피운다.

10년동안 모임을 갖다보니 이제는 부인들끼리 더 친해질 정도가 됐다.

아이들도 허물없이 지낸다.

봄 가을에는 야외로 나간다.

1박2일 정도의 일정으로 청평등지로 나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볼링으로 몸을 풀기도 한다.

밤에는 삼겹살을 구우면서 학창시절 얘기로 꽃을 피우다보면 밤새는줄
모른다.

모임을 가지면서 그동안 꾸준히 회비를 거둬 모은 금액이 3천만원에
이른다.

이 기금으로 자녀들 대학입학시 장학금을 줄 생각이며 회원들의 경조사
비용으로도 사용한다.

연말에는 양로원이나 고아원도 찾을 예정이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은 어머니 품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말만 들어도 푸근한 고향을 위해서도 뭔가 보람있는 일을 했으면 하는게
내 생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