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우 <한화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세계 금융시장은 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7월초 태국에서 시작된 동남아지역의 통화위기는 아직 진정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점차 확산되면서 홍콩도 그 영향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홍콩 증권시장이 환율방어의 와중에 폭락하게 되었고, 이는 미국에서도
증권가격의 급등락을 불러왔으며 다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
증권시장의 불안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금융불안의 전염현상은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94~95년의 멕시코 통화위기 때도 인접한 중남미 국가들은 물론
일부 타지역 국가들까지 큰 폭의 평가절하를 경험하였다.

또한 "블랙 먼데이"로 불려진 87년 미국 증권시장의 폭락사태 때도 많은
국가의 증권시장이 동반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이러한 금융불안이 파급되는 범위와 정도가 더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위기는 대체로 금융시장이 고도로 발달하여 상호 연계성이
높은 일부 선진국들로 국한되거나 인접한 국가들 사이로만 퍼져나갔지만
요즘은 한 국가에서의 위기가 여러 지역의 국가로 급속히 확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세계화 추세이다.

지금 세계경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추세는 통신기술의 발달과 각국의 개방화물결에 힘입은 것인데,
이로인해 국제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교역은 물론 자본의 이동이 크게
증가했다.

많은 기업들이 직접투자를 통해 다국적 기업으로 변신하여 여러나라에서
활동하게 되었고,각국의 투자자금도 자국 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의 금융시장을 찾고 있다.

이렇게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세계 경제에서는 어느 한 국가의 경제가
어려움을 겪으면 이는 이 국가와 교역및 투자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다른
경제들에도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또한 과거에는 자본의 이동이 주로 선진국의 금융시장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것에 비해 요즘은 개발도상국이 세계의 자본흐름에서 차지하는
몫이 커지게 되었다.

세계은행에 의하면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매년 유입되는 민간자본의
규모는 지난 90년에 이미 5백억달러에 달했으며 불과 6년만인 96년에는
다시 7배 가까운 3천3백60억달러로 급증했다.

이처럼 선진국 개발도상국 할것 없이 점차 세계 자본시장으로 통합되고
있으므로 선진국의 금융불안정이 개발도상국으로, 개발도상국의 금융위기가
선진국으로 파급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금융불안도 점차 "세계화"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들어 국가간의 자본이동에서 단기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교역을 통한 상품과 서비스 이동이나 타국에서의 기업활동을 전제로 하는
직접투자와 같이 비교적 장기적인 고려에 의해 일어나는 국제경제활동과는
달리, 단기적인 자본이동은 말그대로 단기간에 손쉽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단기자본은 경제의 미세한 상황변화에도 즉각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근래에 와서 한 경제의 금융불안이 다른 경제로 전염되는
정도와 속도가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의문이 일어난다.

첫째 그렇다면 이러한 금융불안이 자국으로 파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경제의 개방 폭을 줄여야 하는 것인가.

나라 경제의 문을 닫아 걸면 다른 나라에서 비롯된 불안정이 파급되지
않을 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경우 국가간의 교역과 자본이동에서 얻는 경제적인 혜택은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

비유해서 말한다면 감기에 걸릴까 두려워 남들과의 교분을 완전히 끊고
사는 사람의 신세나 마찬가지다.

둘째 밀접히 연계되어 있는 세계의 경제들은 모두 불가피하게 금융불안을
겪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올해 동남아의 통화위기를 보더라도 국가에 따라 위기의 정도는 다르다.

멕시코 통화위기에서도 인접국인 칠레나 콜롬비아는 피해를 거의보지
않았으나 오히려 멀리 떨어진 필리핀은 큰 폭의 평가절하를 겪어야 했다.

여기서 통화위기를 겪느냐 안 겪느냐의 차이는 바로 경제의 기본체력
이었다.

통화가치가 경제상황에 걸맞는 수준이고, 국내 금융부문이 건실한
국가들은 큰 무리없이 이러한 금융불안에 대처할수 있으므로 통화위기로
인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으나,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대부분 심한
몸살을 앓았다.

현재 우리 나라는 심각한 금융불안 현상을 겪고 있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은 과다부채기업의 도산, 금융부문의 취약 등
우리나라 경제의 체력저하이다.

체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국제적인 불안정에 부대끼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맞아 당장의 괴로움만을 피하려는 단기적인
처방에만 급급하거나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한 개혁이나 개방을 늦춘다면,
이는 문제의 핵심을 피하고 우리 경제의 병을 더 깊게 하는 일일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