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때 국어를 가르쳐주셨던 소설가 장욕학 선생님이 교내 사진전
방명록에 "사진은 각도의 예술이다"라고 쓰셨을 때 나는 깊이 감탄했다.

그후 내가 다시 사진기를 만지게 된 것은 야생화 촬영팀을 따라 다니면서
부터였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근교로 나갔다가 여름휴가 때 시간을 내어 본격적으로
야생화를 찍으러 1박2일 일정으로 향로봉으로 향했다.

첫날 오후 오대산 북대사 능선에 올라 동자꽃 군락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주홍빛 색깔에 취해버리고 말았다.

다시 한 모퉁이를 돌아서 금강초롱과 왜솜다리 (에델바이스)를 만났다.

다음날 약속된 군부대가 있는 향로봉에 올랐다.

공기는 50년대처럼 맑고 시계는 투명했다.

산 정상에 질펀한 야생화 벌판이 나타났다.

잔대 모싯대 촛대승마 돌쩌귀 둥근이질풀 참배음차즈기 왜솜다리
산오이풀 진범 고려엉겅퀴 수리취 곰취 개미취 송이풀 바늘꽃 마타리
구절초.

도대체 지금까지 몇십년을 산에 다니며 이런 꽃들을 한번도 못보았다니!
딴 세상에 온 것이다.

이날 촬영에 나섰던 사람들이 서울로 돌아오며 자연스럽게 생긴 모임이
"향로봉 클럽"이다.

그 회원은 신우재 청와대 공보수석 비서관,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장,
우종영 연구실장,
최락경 서양화가,
이수영 사진작가,
이원규 사진작가,
그리고 필자까지 포함하여 7명이지만 자주 부인들이 동참하여
숫자가 늘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사진기 하나를 들고 대암산 용늪에서, 또 함백산 어디에서 시각
문법을 배우며 공범자의 행복을 즐겼다.

관찰하는 법,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사진 찍는 요체라고 프랑스의
사진작가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