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그렇게 시작해서 자꾸 친해갔다.

늦게 불붙은 사랑의 불을 끌 수 있는 장사는 아무도 없다.

그들이 사랑을 시작한지 삼주일이 채 못 되었을 때 박광석은 미아를
저녁식사에 문수와 함께 초대해서 즐겁고도 의미깊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일단 마음을 정하면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는 성질 급한 공박사는 이제
천군만마가 와도 끄덕없을 장수처럼, 보수적이고도 암팡진 박광석의
어머니와 드디어 마주앉게 되었다.

하도 장가를 안 들고 농땡이를 쳐서 박광석은 그 가문의 문제아로
골치를 썩였다.

그런 박씨 가문의 외아들 박광석이 여식이 둘이나 있는 과부 의사와
결혼을 한다니 온 집안에 일대 파란이 일었는데, 박광석은 그러한 내막을
전혀 공박사에게 입도 안 뗀다.

그렇잖아도 공박사가 자신은 10년이나 연상의 두 딸이 딸린 미망인이라며
그 핸디캡으로 다시는 안 만난다고 엄포를 놓아 박광석의 속을 썩이는데
노모까지 칼을 물고 덤비는 것이다.

"얘야, 우리 박씨네 문중에는 이런 일이 없다. 네 시고조부가 영의정을
지내셨고..."

"시시고조부는 좌의정을 지내셨는데 저희는 왜 이리 못 삽니까? 우리가
지금 찌그러져 가는 빌딩이 하나 있어요, 제가 돈을 썩 잘 법니까?
그 여자는 내가 10년을 찍어도 안 넘어가던 절개 있는 미망인입니다.

어머니, 제가 얼마나 실속파인지 알지요? 그 여자는 한달에 몇천만원씩
버는 여의사예요.

그 여자가 아니면 안 간다 이 말씀 입니다.

재혼할 마음만 먹으면 나보다 훨씬 잘 난 남자에게 시집갈 수 있는 부자
여의사란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10년이나 짝사랑하다가 이제 겨우 답을 얻어냈는데, 왜
제가 포기합니까? 호박이 덩굴째 굴렀는데요"

"그래도 안 돼. 안 된다면 안 돼. 이 썩을 놈의 쌍놈의 자식아"

모자간의 언쟁은 너무 길고도 지루하다.

일하는 아줌마가 할머니에게로 달려가면서, "에그그, 어머니께서 드디어
졸도를 하셨습니다"

악을 쓰던 박광석의 어머니는 슬그머니 드러눕더니 부들부들 떨면서
게거품을 내뿜다가 병원에 실려가던 도중에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니까 공박사와는 실제로 마주앉지도 못 했다.

어머니에게 공박사와의 결혼을 설득하고 또 설득하던 박광석은 그리하여
박씨 문중에는 알리지도 않고 회사 동료와 공박사의 친구들이 모여서
축하해주는 속에 노모 작고한지 반년이 지났을 때 형식상의 결혼식을
올리고 아예 압구정동에 아파트를 하나 사서 그녀와 동거해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누가 뭐라건 말건 이미 한쌍의 완벽한 부부로서 각종 파티에도
참석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