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5일 부도위기에 직면하여 즉각적인 부도처리가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 때문에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 기업으로 선정되어 부도가 유예되어
오던 기아자동차의 두개 회사에 대하여 결국 채권단에 의한 법정관리가
신청되었다

기아문제의 논의는 기업으로서나 일터로서의 기아를 살리고 정상화하려는
노력보다 누가 주도권을 갖고 이를 처리하느냐의 논쟁으로 영일이 없었고,
급기야는 지루한 법적수속으로 시간벌기에 들어간 느낌마저 주었다.

이처럼 우리경제를 옥죄어온 기아문제는 급기야 그 여파가 국내 외환
시장과 증권시장의 불안을 심화시켰고, 나아가 우리경제의 대외 신용도에
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채권금융단에 의한 법정관리신청은 부득이한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하며,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법정관리신청을 통한 기아문제의 접근은 이제 그 출발에 불과하다.

더이상 지루한 공방으로 국민경제를 멍들게 해서는 안될 것이며, 관리
여부의 결정도 어디까지나 경쟁시장에서 자생력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불확실성이 초래하는 경제주체의 불안은 예기치 못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외환 증권시장의 혼란도 외부시장의 영향과 함께
따지고 보면 바로 이러한 불안의 여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부도유예기업도 유예기간중에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과감히
퇴출시키는 용단을 내릴 수 있고, 또 법적절차를 통한 시간벌기 작전에
대해서도 신축적인 대응이 가능토록 채권금융단의 유기적 협력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금융시장의 불안에 가장 이해관계가 큰 업종은 뭐니뭐니 해도 금융기관이다

따라서 개별기업의 부실문제 처리는 시장기구를 통하여 이해 관계자들간에
해결토록한 방침은 형평과 정치문제 그리고 WTO체제하의 통상마찰과 보복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올바른 선택이며, 채권자인 금융기관들은 스스로의
권익을 확보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

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은 시장경제의 장점이며 부실기업의 퇴출은 전체
경제의 활력요소가 되기도 한다.

기업의 경영환경 변화에 대비한 효율적인 구조조정 실패와, 경기불황으로
광범위하게 파급되고 있는 도산과 부실을 막연히 우려만 하고 남을 탓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본분을 지켜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자세확립이 절실하다.

경영자는 먼저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절감하고 기업의 회생과 그 피해의
최소화를 위하여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 적극 협조하는 성의를 보여야하며,
채권금융기관은 기업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회생여부를 신속히 결정
하여 지원할 것은 지원하고 퇴출시킬 것은 과감히 부도처리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특히 다수의 채권금융기관이 서로간의 이해때문에 효과적인 협조체제를
갖추지 못함으로써 문제처리에 때를 놓치고 손실을 크게 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경제문제는 어디까지나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권의 자제 또한 소망스럽다.

문제는 이러한 기업부실이 정리됨에 따라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이 늘어나
경영에 제약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신용질서에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전체경제의 안정을 유지하고 시장관리자로서의 정부의 역할은 여기에
효과적인 대비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먼저 사태의 진전에 따라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한 비상계획을 갖고 이를
일관성있게 밀고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개방과 교류가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대외신용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하며 구체적으로는 은행 등에 대한 해외
채권자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그리고 여태까지 부실기업문제로 야기되는 금융기관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일을 중앙은행의 발권력에 의한 특융과 개별금융기관의 자금회수 유예
등으로 처리하고 있으나 예상되는 부실의 규모나 이로 인하여 금융기관에
쌓여질 부실자산의 내용들을 고려할 때 보다 근본적인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당면한 경제문제에 대한 국민의 우려와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비추어 발권력에 의한 금융시장 지원으로 통화가치의
안정의도를 훼손당하여 대외신용을 하락시키기보다는 결과적으로 국민부담
으로 귀결될 재원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여야합의에 의한 입법
조치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특별기금이나 지급보증한도를 설정하여 이를 재원으로 신용질서와 금융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면서 1980년대 중반 스웨덴 등 북구제국이 금융위기
극복과 함께 미래를 위한 보다 효과적인 금융개편에도 활용한 다목적인
포석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개별기업과 금융기관의 자구노력이 가일층 강화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촉구하고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인 조치도 하루 빨리 실시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모든 경제주체들의 구조조정노력과 정부의 경제운영방향을 분명하게
함으로써 대내외적인 불안을 해소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 약력 ]

<>부산대법대 졸업
<>서울대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한국투자금융사장
<>하나은행장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