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자금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잇단 기업부도사태와 주식시장침체 등의 영향으로 자금조달줄이 막히다
시피한 국내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대외신인도 추락 등으로 해외시장에서의
자금조달여건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이에따라 금융비용부담이 증대되면서 기업의 경쟁력이 더욱 약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값싼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도 규제에 막혀 자금을 끌어쓰지
못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자금조달규제완화야말로 기업경영을 지원해 줄수 있는 키포인트의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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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은 재정경제원이 지난 18일 발표한 기업외화금융 규제완화방안에
"배신감"을 느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화력발전소 연료로 쓰이는 천연가스 도입자금을 상업차관
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요청했는데 이번에도 빠졌기 때문이다.

값싼 자금으로 연료를 살 경우 전기요금 인상요인을 줄일 수 있는데도
상업차관 용도제한에 계속 묶여 있다.

H전자는 지난 95년 미국 회사 인수를 포기해야 했다.

미국에서 인수자금을 조달하려고 했는데 소요자금의 20%를 자기자금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정부가 발목을 잡은 탓이다.

상업차관 해외증권 현지금융등.기업들이 자기신용을 바탕으로 자금을 해외
에서 값싸게 조달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 12%를 넘는 고금리로는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해외에서 5%짜리 자금을 끌어다 써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고 국내금리도
한자릿수로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전경련은 해외자금조달을 자유화할 경우 법정관리에 들어갈 운명에 처해
있는 기아그룹조차도 빠른 시일안에 정상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외자금조달로 평균차입금리를 11.5%에서 5%선으로 낮추면 순금융비용이
연간 6천2백46억원에서 2천7백11억원으로 떨어지고 경상이익은 1천45억원
적자에서 2천4백92억원의 흑자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조업 전체의 경상이익률도 0.99%에서 3.35%로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재경원은 이런 요청을 받아들여 내년1월부터 상업차관 도입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상업차관 해외증권 외화대출의 시설재도입용도를 일원화함으로써 대기업도
첨단 외에는 외산시설재도입용 상업차관을 도입할 수 있게 했다.

올해 10억달러로 묶여 있는 한도도 없앴다.

그러나 값싼 자금에 목말라 있는 기업들은 규제완화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용도가 시설재도입과 해외투자.사업 및 외채조기상환등으로 제한돼
있어서다.

올해부터 해외증권발행한도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8월말까지 30억달러만
발행된 것이 이런 사정을 드러내 주고 있다.

막상 자유화된 이후에는 주가 하락으로 발행조건이 악화돼 발행 자체가
연기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데이콤과 SK텔레콤이 해외증권 발행을 포기했고 포항제철도 주식예탁증서
(DR) 발행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재경원이 해외자금조달을 규제하고 있는 것은 자유화할 경우 외화유입이
크게 늘어나 시중유동성이 불어나고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통화를
환수할 경우 금리가 올라가 대다수 중소기업과 개인들이 피해를 본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민간 이코노미스트들은 물가는 통화량보다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에
더 영향받는다고 반론한다.

산지와 소비지에서의 가격차가 10배에 이르는 유통구조가 물가상승의 주범
이라는 것이다.

또 선진국 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만큼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들어 민간저축률이 떨어지고 국가의 재정수지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증권시장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밖에서 값싼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대폭 넓혀야 한다는 얘기다.

<홍찬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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