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동차산업은 한때 무서운 기세로 설비확장을 추진하며 세계
자동차업계로부터 경계의 대상으로 꼽혔다.

하지만 지금은 과잉설비, 낮은 생산성, 출혈경쟁 및 이에 따른 경영수지
악화 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같은 진통은 지난 7월말에 3대 완성차 조립업체의 하나인 기아자동차가
부도유예협약 적용업체로 결정되면서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이같은 상황의 돌파구를 업계는 해외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대우자동차가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우즈베크 등에서 현지공장을 매입 또는 건설해 국내에서 1백만대, 해외에서
2백만대 생산체제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본지 신영섭 논설위원이 대우자동차의 폴란드공장을 돌아보고 국내자동차
업계의 해외진출이 현재의 위기탈출을 위한 대안이 되려면 어떤 난관을 극복
해야 하는지 살펴 보았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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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동차산업의 공급과잉 및 구조개편 가능성은 이미 국내외 연구
기관과 언론에서 여러번 경고했으나 규모의 경제를 통해 단위당 제조원가를
절감해야 경쟁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국내자동차회사들은 설비확장을 계속
추진해왔다.

그러나 단위당 제조원가가 하락해도 자동차가 잘 팔리지 않으면 결국은
밀어내기 판매(또는 수출)로 적지 않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제살 깎기식 경쟁의 좋은 예로 무이자 장기할부판매를 들 수 있다.

이렇게 내수시장이 포화상태라면 탈출구는 수출증대밖에 없지만 자동차
공급과잉이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이 문제다.

현재 공급과잉의 해소방안으로 인수합병 및 설비축소 해외진출 등이
얘기되고 있다.

비록 자동차업계 일부에서는 최근의 어려운 상황은 일시적일뿐 조만간
수출경기가 회복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한편 외국언론이나 국제기구는 국내자동차산업의 과잉설비축소를 권고하고
있지만 기아처럼 부실징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어느 기업도
설비축소나 인수합병에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경영"을 내세운 대우자동차의 해외진출이 장밋빛만은 아니며
극복해야 할 많은 난관들이 있다.

우선 대우-FSO에 5년동안 관세면제혜택을 주기로 약속한 폴란드정부에
대해 EU의 압력이 거세다.

폴란드는 EU가입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헝가리 체코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키프러스 등과 함께 오는 2000년까지 EU에 가입할 우선대상국으로
지정돼 있다.

따라서 EU는 폴란드가 EU에 가입한뒤 폴란드공장에서 생산되는 대우자동차
들이 EU시장으로 우회수출되지 않도록 미리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총선에서 자유노조의 지지를 얻은 정당이 승리함으로써 폴란드
정부의 정책방향이 어떻게 변할지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결국 대우-FSO는 폴란드가 EU에 가입하기 전에 관세면제혜택을 활용해
최대한 기반을 굳혀야 한다.

특히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살려 동부유럽과 러시아에 대한
자동차 수출기지로 적극 활용해야 하겠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현지공장을 인수하거나 건설한 뒤 생산되는 자동차를
얼마나 팔 수 있느냐는 점이다.

현재까지는 폴란드의 경제성장률이 높고 자동차수요가 많아 판매는
순조로운 편이며 특히 티코에 대한 인기가 좋다.

또한 폴란드가 EU에 가입하면 경제성장이 가속될 것이다.

그러나 폴란드경제만의 자동차수요에는 한계가 있으며 특히 레간자같은
중대형차 수요는 당분간 크게 증가하기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폴란드공장을 동유럽과 러시아 등 신규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기지로 활용하며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같은 틈새시장전략(nitch market strategy)을 통해 얻은
시간과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는 점이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자동차같은 내구소비재를 판매할 때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중하고 노련한 판매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부품교체 고장수리 중고차판매 등을 위해 자동차회사와 지속적인
접촉을 가지며 자동차를 살 때는 가격이나 지불조건 이외에도 애프터 서비스
망, 광고와 딜러의 조언을 통한 브랜드인지도, 그리고 제품평판(reputation)
등도 고려해 신중하게 선택한다.

그러므로 후발업체인 우리 자동차회사들은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것도 좋으나 단기적인 실적 올리기에 너무 급급한
나머지 시장질서를 흐트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넷째로 현지공장의 원가절감 및 생산성향상을 통한 국제경쟁력강화를
서둘러야 한다.

폴란드공장은 생산라인이 20년 이상된 시설이어서 물류과정이 복잡하고
생산성이 떨어진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각 공정을 마친 조립품을 지게차로 옮기고 있으며
금형교환시간이 국내에 비해 3배이상 걸리기 때문에 조립라인의 가동률이
60%미만에 불과하다.

또한 폴로네츠(Polonetz), 차체공장의 경우 자동화율이 40%미만이며 아직
생산정보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차종선택이 생산단계가 아닌 조립단계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물론 디자인 개선, 금형교체시간 단축, 생산정보시스템 구축, 현장감독자
재교육 등을 통해 문제해결에 힘쓰고 있다.

결국 폴란드공장의 인건비를 비롯한 생산원가가 선진국 수준으로 오르기
전에 생산성과 품질, 그리고 브랜드인지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켜야 하는
치열한 서바이벌 게임을 벌리고 있는 셈이다.

다섯째로 기술 및 연구개발의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현지노조와 협력
관계를 다지는 한편 광범위한 경영정보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하겠다.

특히 영국의 워딩 자동차 디자인연구소의 디자인능력, 폴란드와 체코의
생산기술 등 해외기술 및 연구개발을 잘 활용하려면 현지 기술.연구인력의
이직을 최소화해야 하며 현지공장의 노조와 협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현재 폴란드 대우-FSO공장에는 4개의 노조가 있는데 낮은 생산성을
단기간에 끌어 올리는 과정에서 노사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노사갈등이 아니라도 언어 문화 사고방식 생활습관 등 많은 점에서 우리와
다른 현지종업원들이 능력을 1백% 발휘하도록 하려면 해외근무 경험이 많은
노련한 경영진들을 현지기업에 내보내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능하고 노련한 최고경영진과 중간관리자들이 크게 부족해
기업들이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현지기술을 최대한 데이터화해 입력하는 생산.기술 정보시스템의
구축도 필요하다.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외진출에 성공할 때 비로소 우리기업의
세계화는 이루어지며 국내자동차업계의 위기극복도 가능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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