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후 재건축될 지역에 17평짜리 아파트가 있다면 얼마에 사겠습니까.

즉답이 나올리없다.

단순히 17평짜리 아파트라면 몰라도 "1년후 재개발"된다는 "딱지"가 붙어
있어 답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재개발딱지''만을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계산만 제대로 되면 답은 간단해진다.

학문적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이같은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공식
하나쯤 만들어 보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피셔 블랙 교수와 마이런 숄즈 교수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들이 도출한 계산식은 재개발딱지를 대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관심은 주식을 "미리 정한 값"(행사 가격)에 살 수 있는
"주식매입권", 즉 콜옵션에 있었다.

상당히 밀도있는 작업끝에 이들은 이른바 "콜옵션가격 평가모델"을 만들어
냈고 그 공로로 지난주 숄즈 교수는 2년전 타계한 블랙 교수를 못내 그리워
하며 영예의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언뜻 보아 "재개발딱지"와 "콜옵션"은 전혀 별개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권리"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속성과 본질이 똑같다는 점을 알게 된다.

1년후 포철주를 4만원(행사 가격)에 살 수 있는 콜옵션은 현재 포철주가
5만원 정도니까 1년후 6만원으로 올라가면 당장 2만원의 소득이 생긴다.

반면 포철주가 1년후 3만5천원으로 떨어지면 콜 옵션을 보유한 사람은
그 권리행사를 포기해버리면 그만이다.

따라서 콜옵션의 값은 그 행사가격이 낮으면 낮을수록, 1년후 포철주의
값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면 클수록 그 가격이 비싸진다.

재개발딱지도 마찬가지로 새로 지을 아파트의 평수가 크면 클수록, 부동산
가격상승 가능성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평당 불입액(행사 가격)이 낮으면
낮을수록 딱지의 값은 비싸진다고 할 수 있다.

재개발딱지가 개념적으로 콜옵션의 한 변형에 불과하다는 사실 외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널리 발행되고 있는 전환사채(CB) 또한 보통 채권에
콜옵션을 첨가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주식도 결국은 콜옵션으로
볼 수 있다는 인식은 블랙.숄즈의 콜옵션 모델이 학문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개념적 돌파구를 마련했는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나라경제가 엉망이고 증권시장에 공황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마당에
무슨 한가로운 노벨상 타령이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 무감각한
것이야 말로 우리가 안고 있는 맹점이다.

이번 노벨상발표를 계기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현대 자본시장이론의
초석을 쌓은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이론이 발표된 것이 59년이고 블랙.
숄즈가 JPE에 콜옵션 모델을 내놓은 것이 73년이었다는 사실이다.

뒤늦게 개발된 블랙.숄즈의 이론만 놓고 보더라도 4반세기가 지난 것이다.

그동안 서구 자본시장은 각대학과 MBA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 이론으로
철저히 무장된 투자가들로 메워졌다.

시카고의 선물 등 파생상품시장의 번성이 그 상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 들어서야 그것도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옵션시장을 개설한 우리와
비교하면 너무 큰 격세지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시장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의식구조는
구태의연 그 자체다.

최근 시장의 붕괴를 막아보려는 시도에서 외국인 투자한도를 늘리고
일본계 투자자금의 주식차익에 대해서는 비과세한다는 등의 부양책을
내놓은 것은 우물안 개구리식 사고의 단적인 예다.

옛날 같으면 초대형 호재일 수 있었지만 서방 프로들에게는 이들 조치들이
우리 스스로의 다급함을 시인하는 카드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기아사태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는한 시장붕괴가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왜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

최근 국내시장에 6천억원 정도의 투자를 하고 있는 미국 투자펀드의
회장이 국내 굴지의 통신회사에 두번에 걸쳐 편지를 냈다.

이 회사가 발행하려는 DR에 대해 우려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기업들의 투자수익성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신규투자는 타당성이
없으며 회사 전체의 수익성과 기존주주의 권익보호를 위해서는 신규투자를
위한 DR 발행보다는 자사주확보가 더 절실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미국 회장의 요구가 묵살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외국인들은 눈뜬 장님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한수위의 철저한 프로들이라고 봐야 옳다.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과의 거래는 누구도 거래를 오래 지속하려 들지
않는다.

최근들어 한국기업들이 해외에서 기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86,87년 우리나라 경제와 증권시장이 호황을 누릴 때의 일이다.

당시 재무부 증권과는 외국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만큼 재무부가 이권을 많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지금은 고위직에 있는 한 관료가 "요즈음 외국인 투자가들은 내
명함만 받아가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부끄럼 없이 거들먹거리던 일이
생각난다.

바로 이런 사고와 권위의식야말로 우리시장을 이 지경으로 만든 근본
원인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느낌일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