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에 대한 마지막 국정감사가 파행을 거듭한 끝에 18일 마감됐다.

초반부터 여야가 뒤바뀐 듯한 양상으로 맥없이 진행되던 이번 국감은
"김대중 비자금설"로 아예 여야의 정치공방장으로 변해 국감 본연의 책무를
망각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번 국감은 시작부터 비정상적인 행로가 예고됐었다.

신한국당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내부 전열조차 정비되지 않은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의원들의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상태였고, 국민회의는
수권능력을 과시한답시고 "여당연습"에만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비자금 광풍에 국감자체가 휩쓸려 날아가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이때문에 O-157 대장균 발견으로 불거진 쇠고기검역체계 문제를 비롯해
경부고속철도 부실시공, 기아사태 수습, 미국의 슈퍼301조 발동에 대한 대책,
KF-16전투기 추락사고 등 굵직한 쟁점들이 흐지부지되고 만 것은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국감이 최근들어 쟁점사안에 대한 실증적인
문제제기와 대안제시형 비판으로 자리잡아가는 듯 했으나 이번 국감에서는
완전히 과거의 행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동안 잠잠하던 "국감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국회 자체예산에 책정된 국감활동비는 13억6천만원이지만 한 경제
학자는 작년 한햇동안 국감에 들어간 공적인 비용이 국회의원들의 출장비
자료수집비 및 동원된 공무원들의 월급 등을 합해 모두 6백27억원이나
됐다고 산술적으로 계산해낸 적이 있다.

여기에 각 부처에서 음성적으로 사용하는 접대비 등을 합하면 실로 엄청난
비용이 국감이란 연례행사로 없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국감은 고비용-저효율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그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국감은 72년 유신헌법 시절 한때 폐지되었다가 87년 헌법개정으로 부활된
이래 관료주의에 찌든 행정 관행에 제동을 걸며 나름대로 국정비판과 정책
해법을 제시하는 등 크고 작은 역할을 수행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볼때 문제는 어떻게 하면 국정감사의 비리와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동시에 그 순기능을 최대한 확대하느냐 하는 것이다.

국감이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의원들이 소속 정당의
당리당략이라는 구속의 고리를 끊고, 국민을 대표해 행정을 감시하는 중립적
위치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국회의원 개개인은 물론 각 정당을 비롯한 정치권 전체가 발상의
대전환을 이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올해 국정감사는 끝났지만 곧 이어 착수될 새해 예산안 심의와 국감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국감을 통해 확인된 비효율적 자원배분을 예산심의과정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국감은 엉망이 됐지만 예산안 심의만이라도 당리당략의 관점에서
놓여나야 한다는 지적을 덧붙여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