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연일 폭락, 결국 600선마저 무너졌다.

들려오는 소식이라곤 어디가 부도다, 또 어디가 위험하다는 얘기 뿐이고
보니 투매가 빚어지고 주가가 폭락하는건 당연하다.

걱정했던 최악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어떤 기업이건 부도를 냈다면 그 책임이 해당 기업에 있다는 지적은 옳다.

한보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 쌍방울 해태 태일정밀 등 올들어
사실상 부도를 낸 기업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그렇게 결론낼수 있다.

동계 유니버시아드를 유치하고 무주 리조트사업에 수천억원의 단기자금을
쏟아부었다가 화의신청을 낸 쌍방울, 대구종금주식인수 수원종합터미널
대전동물원건설 등에 엄청난 돈을 들였다가 결국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
기업으로 전락한 태일정밀 등 최근에 무너진 두 곳만 봐도 그러하다.

무리한 경영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고,그러므로 지탄받아 마땅하다는데
이론이 있을수 없다.

우리는 "부도여부는 전적으로 기업과 채권은행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분명히 한 강경식부총리의 지적이 원론적으로 옳다는데도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경영부실을 정부에서 떠맡아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분명히
전시대적이고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소리도 옳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대로 갈 경우 어떻게 될 것이냐는 점이다.

어떤 논리보다도 이 점이 더욱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게 우리
인식이다.

한 기업이 무너졌을 때 새로운 또 다른 기업이 그 빈 자리를 메울수
있다면 기업도산은 반드시 절망적인 일이 아닐수도 있다.

신진대사는 자연과 시장의 순리니까.

그러나 빈 자리가 메워지지 못할 상황이라면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우리는 오늘의 상황이 바로 그런 지경에 근접해 있다고 본다.

부도가 나더라도 생산시설이 날아가는 것도 근로자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제3자가 부도업체를 인수해 경영하면 그만이고, 이 경우 효율이
오히려 높아질 수도 있다는 식의 인식은 오늘 이 상황에서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손꼽을 정도의 극소수 몇개 그룹을 제외하면 모두 하나같이 자금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순리적인 신진대사를 기대하는건 애시당초 무리다.

바로 그런 점에서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부도를 해당기업의 문제로
간주하는 시각은 잘못이다.

부도가 연쇄부도 우려를 낳고, 그것이 금융권의 자금회수로 이어져 또다른
부도를 낳는 국면이 벌써 몇달째다.

그 악순환의 결과로 종금사등 금융기관도산이 빚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전무한 형편이다.

더이상 정부가 소극적이어선 안된다.

정말 특단의 조치를 내놔야 한다.

특융을 8%가 아니라 2~3%로 해주는 것도 검토해볼 문제다.

계속 줄다리기중인 기아문제도 매듭을 지어야할 것은 물론이고, 금융권의
보수적 자세를 감안, 통화공급에서도 좀더 융통성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더이상 부도가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데 정책의 1차적 목표를 둬야 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