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연쇄부도가 대기업에 이어 알차기로 소문난 중견기업에까지 번지고
있다.

대표적 중견기업인 태일정밀이 지난 14일 1차부도를 내고 15일 부도유예협약
적용기업으로 지정된데 이어 매출액기준 재계 98위인 쌍방울그룹이 이날
법원에 화의를 신청했다.

또 해태그룹은 채권금융기관의 협조융자(5백47억) 실시방침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긴 상태이며 다른 중견기업들도 잇따라 부도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같은 부도사태는 금융기관의 보수적자금운용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정부
마저 "채권은행과 기업이 알아서 할일"이라고 팔짱만 끼고 있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아사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견기업까지 연쇄부도에
휘말리고 있어 정부의 획기적 대책이 나오지 않는한 "대기업부도-중견기업
부도-금융기관창구위축-기업및 금융기관의 동반부실화" 현상이 확대
재생산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쌍방울그룹이 15일 법원에 화의를 신청하고 태일정밀이 부도유예협약을
적용받음에 따라 올들어 부도를 내거나 부실화위기에 몰린 대기업과 중견
기업은 한보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에 이어 7개로 늘었다.

이들 기업에 대한 금융권여신만 무려 20조원을 넘고 있다.

이는 은행총여신 3백6조여원의 6.5%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처럼 부도사태가 진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기업들의 허약한 재무구조와 무리한 사업확장이 화를 불렀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또 은행과 종금사등이 갑작스런 여신회수에 나서 멀쩡한 기업도 흔들리게
하고 있다는 분석도 그럴듯하다.

그러나 기업연쇄부도를 재촉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정부의
오불관언적 태도에 있다는게 금융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정부가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은행등 금융기관의 불안감은 더욱
확산됐고 이는 다시 무차별적인 여신회수로 이어져 멀쩡한 기업마저 연쇄
부도라는 블랙홀로 밀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는 부도유예협약이 사실상 사문화된 이후 기업부도에 대해
"나몰라라"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강경식 부총리부터가 "부도여부는 전적으로 기업과 채권은행이 알아서
할일"이라며 원론을 외치고 있다.

다른 당국자들도 한결같이 정부의 불개입원칙을 전가의 보도처럼 외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정부가 채권은행이 알아서 하라고 수수방관한다면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추가여신제공에 부정적일수 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면
살아남을 기업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가 기업연쇄부도의 미필적고의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확실한 안정의지를 보여줘야만 연쇄부도가 진정될 것이라는게 금융계의
중론이다.

< 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