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이 고향인 진 샤오펑씨.

그는 올해초 샌호제이 마켓스트리트의 건물 한켠에 4평 남짓한 공간을
얻어 "CASS 인포메이션 시스템"이란 회사 간판을 내걸었다.

진씨가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태평양을 건너 낯선 실리콘밸리를 찾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곳 실리콘밸리에서는 창고속의 어떤 아이디어도 돈줄을 만나 황금으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는 한마디로 "즉석 창업공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곳엔 독창적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하루 반나절만에 회사라는 형태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자금과 경영 환경이 조성돼 있다.

헤드 헌터사인 트리넷 임플로이어 그룹의 마틴 바비넥 사장은 "우리는
근로보험 작업에서부터 주문형 이익계획서까지를 하루저녁에 만들어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쪽으로 30분거리에 있는 맨로파크의 샌드힐 로드.

여기에는 1백여개의 벤처투자사가 들어서 벤처기업들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리서치 전문업체인 벤처원사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실리콘
밸리의 신생업체에 투하된 벤처자금은 55억달러에 이른다.

이는 미국 정보통신 투자총액의 37%를 차지하는 액수.

지난해 미국 정보기술 벤처캐피털 투자의 35%가 실리콘밸리에 집중된
것으로 분석된다.

실리콘밸리의 돈줄은 주식옵션의 행사 등을 통해 축적된 부를 기반으로
초기 벤처기업의 자금을 지원하는 개인투자가인 "에인절"과 연금 기부금
생명보험 등을 모아 벤처투자 펀드를 구성, 운영하는 투자회사인
"벤처캐피털"로 구성된다.

이들은 벤처에 담보없이 돈줄과 경영 노하우를 제공하고 지분을 나눠
받는다.

정상급 벤처투자사로 이름이 난 클라이너 퍼킨스와 엑셀파트너스 등은
투자 업체의 상장(IPO)으로 투자액과 평균 30%의 덤을 회수한다.

벤처투자사인 알토스 벤처스의 관계자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은
"고수익에 따른 고위험(High-risk & High-return)"의 원칙에 따라 아무
담보없이 리스크를 각오한 투자를 감행한다"며 "이에따라 사업에 따르는
리스크와 이익을 함께 나누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 벤처자본은 단순히 벤처기업에 혈액인 자금과 함께
양분인 인맥과 전문가도 제공한다.

단순 자금 제공자가 아니라 벤처 비즈니스 창출의 조직자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셈이다.

벤처기업의 임원은 물론 기술 마케팅 등 적합한 전문가를 경영진으로
선정, 기업운영에 참여시켜 창업 단계에 효율적 육성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가기도 한다.

벤처기업 경영과 기술에 관한 노하우가 동반하지 않은 국내 대기업의
자금이 실리콘밸리의 1급 벤처기업에 파고들기 어려운 이유는 명백하다.

경영과 전략지원 솔루션의 부족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근간이 되는 또다른 요소는 인력 네트워크.

이곳엔 무명 벤처기업의 주식을 금은보화로 바꿔줄 수 있는 "현대판
연금술사"들이 넘쳐난다.

변호사와 분야별 전문 경영영컨설턴트 등 수천명의 전문가들이 초보 벤처
기업가를 돕기 위해 항상 대기중이다.

실리콘밸리뉴스의 마이클 김 사장은 "이같은 하드웨어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리콘밸리를 지배하고 있는 독특한 문화적 소프트웨어"라고
지적한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실패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

실패에 좌절하거나 호들갑을 떠는 일도 없다.

언제든 재기할 수 있는 토양이 완벽하게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퍼시픽 림 파이낸셜의 체스터 왕씨는 "이는 실리콘밸리의 독특한 위험분산
시스템 덕택"이라고 설명한다.

사업 리스크가 기업가에 집중되지 않고 벤처캐피털 등에 고루 분배돼
도산이 인생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

또 실리콘밸리는 배신이 용서되는 유일한 곳이다.

동업자나 기술개발자가 조직을 버리고 새로운 밴처기업을 세우는 것에
너그러운 사회풍토를 갖고 있다.

인텔 AMD 시러스로직 넥스트 등 무수히 많은 기업들이 모기업으로부터
세포분열을 통해 탄생하고 성장해 왔다.

IBI의 바바라 할리 소장은 "다양성과 개방성"을 실리콘밸리의 강점으로
꼽는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형태와 규모는 각양각색이다.

정해진 틀과 규칙도 없다.

피부색깔과 성을 구별하는 일도 거추장스럽다.

중국인과 인도인은 실리콘밸리의 당당한 주인공들로 자부한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동양인의 인력비중은 30%에 이른다.

인재 제도 문화가 3위1체로 조합된 엔진을 달고 하이테크웨이를 질주하는
실리콘밸리호에는 브레이크가 없는 듯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