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이 식으면 우리들의 관계도 끝내야 돼요. 우리의 관계는 사랑
하나로 연결된 것이었으니까요 >

그녀가 그의 변심을 느끼면서 하던 말을 상기하면서 그는 공박사가
떠나버린 바닷가의 에스코스 내리막길을 을씨년스럽게 바라본다.

민박사는 공박사가 울고불고 하면서 그에게 끈끈하게 매달리지 않은
것을 참으로 고맙게 받아들이면서도 그녀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차가운
성격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진정 그녀는 맵고도 당찬 여의사다.

학생때도 남학생들에게 찬물 끼얹는 발언을 잘 해서 그녀에게 프로포즈
한번 못 했던 것이 생각난다.

민박사는 집을 떠나올때 와이프가 소리소리 지르면서 히스테리를 부리던
것을 기억해내자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는 오직 공인수밖에 없었다는
자책을 느끼며 오전 내내 바닷가를 거닐며 보낸다.

그리고 미스 한과의 관계도 와이프에게 발각되어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매듭지었으면 한다.

그래야만 지성인다운 태도가 아닌가 반성한다.

민박사는 이내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어서 예정을 바꾸어 곧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여장을 꾸린다.

그러나 진정 미스 한을 떠날 수 있을까? 정말 자신이 없다.

그리고 공박사에게 전화를 넣는다.

오늘 미국으로 돌아가며 공박사에겐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과하고
싶어서였다.

좀 더 진실하게 사과하고 언제든지 지금의 와이프에게 질리면 꼭
공박사에게 가겠노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는 진정 공박사를 사랑하며 살아왔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와이프에게서의
도피처로 공박사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며 지난 7년간을 지내왔다.

"여보세요, 한국에서 온 공인수 박사를 바꾸어 주십시오"

공박사 친구가 받아서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나 한참만에 받은 것은 친구였다.

"지금 집안에 없는데요. 돌아오면 전화하라고 할게요"

"아닙니다. 꼭 할 말이 있어요.

마지막 부탁이니 들어달라고 하십시오"

그는 인정스런 남자답게 그녀에게 애원한다.

한참만에 공인수가 나온다.

"내가 사랑한 남자는 죽은 것 같아요.

다시는 비겁한 소리로 사랑했었노라고 말하지 마세요.

저는 과거에 매달리는 여자가 아니에요.

안녕히 귀가하세요"

그녀는 매정스럽게 전화를 끊어버린다.

멍청하니 그녀의 목소리를 리마인드하면서 민박사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여자는 남자보다 야멸차게 돌아설 수 있다고 하던가? 마음이 모질지
못 한 민박사는 눈물 때문에 손수건이 펑펑 젖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