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 엄마.

나는 오랜만에 문수를 만나볼 거야.

어느 책에서 읽으니 남자 때문에 생긴 병은 남자로만 치료가 빨리 된대"

"네 처방이 아주 명 처방이다.

그러면 엄마는 안심하고 하와이에 다녀오마.

한 일주일 쉬면 좀 신선해지겠지.

여행은 떠난다는 자체만 가지고도 행복하다고 했지?"

"맞아, 엄마.

내가 병원을 지킬게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엄마 속 썩여드려서 미안해요"

그렇게 해서 공인수 박사는 실로 8개월만에 자기의 오랜 남자친구이며
유일한 마음의 도피처였던 민박사를 만나러 호놀룰루행 비행기에 오른다.

미아가 제발 문수와 잘 지냈으면 좋겠다.

별로 잘 생긴 것은 아니지만 문수는 유치원때부터 미아를 짝사랑하던
초등학교 동창이다.

미아에게 그 녀석은 고향과도 같은 남자친구다.

그러나 까탈스런 미아는 그 애에게 늘 성형외과에 좀 다녀오라고 괄시를
해왔고 그 애는 요새 정말로 성형외과에 가서 얼굴을 아주 미남으로 고쳐
놓았다고 그 어머니가 공박사에게 전화를 해왔다.

제발 미아의 마음에 문수가 꼭 들었으면 좋겠다.

공박사는 바다밖에 안 보이는 태평양 상공을 나는 동안 줄곧 미아
생각에 골몰해서 호놀룰루에 다 와서야 민박사와의 즐거운 만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공박사는 체중이 늘었다는 민박사의 호쾌한 전화 목소리를 연상하면서
그의 너무도 사나운 동침의 순간을 상상해본다.

불같은 엑스터시가 끓어오르면서 공박사는 자기의 온 몸이 불길로
타오르는 것을 의식한다.

남편이 죽은 후 10여년, 그는 의대 동창인 민박사하고만 특별한 관계를
가져왔다.

어떤 면에서 민박사는 자기의 스터디 남자친구 이면서 두번째 남편처럼
믿고 의지해온 남자였다.

정신적으로 재혼한 것과 같을 정도였다.

그러나 동티는 민박사 쪽에서 서서히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

그의 병원에 새로 미스 한이 오면서 부터다.

스물다섯의 폭풍같은 정열을 가진 미스 한은 카톨릭 신부같은 민박사를
드디어 그로기 아웃 시키고 말았다.

50을 바라보는 민박사에게 그녀의 출현은 움직이는 꽃처럼 참으로 색다른
향기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정숙한 공박사에게 그것을 고백할 수도 없고 교제를
계속하자니 너무나 벅찼다.

미스 한은 사랑의 방법이 세련되고 특이한 체형을 가졌다.

닥터 민은 마약 중독처럼 현란한 중독증상을 서서히 그녀에게서 느끼고
있었다.

그녀와 동침을 안 하면 도저히 견딜 수 없다.

민박사는 그것을 섹스중독 이라고 스스로 진단한다.

그는 꼭 수요일 오후에 테니스를 친다고 와이프에게 속이고 미스 한의
아파트에 들렀다.

그의 그러한 변화를 모르는 공박사는 그와 같이 있을 동안 입을 홈가운과
파자마 란제리들을 모두 새로 사서 들고 왔다.

공박사는 호놀룰루 공항에서 민박사와 포옹을 하는 순간부터 완전히
감전된 사람처럼 뜨겁게 달아 올랐으나 민박사는 어쩐지 정열이 꺼져있다.

밀랍인형처럼 싸늘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