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화되고 권력화된 주류문화를 거부하고 다양한 소집단문화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진보그룹"

"클럽밴드보다도 저항의식이 약한 아마추어리즘의 90년대식 역설".

요즘 대학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록밴드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이다.

대학가에 록밴드가 급속히 늘어난 것은 불과 1~2년전.

아직 자기 밴드의 음악성과 지향점을 고민하는 단계라서 체계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생겨날 정도로 대학록밴드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것은
대학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칼리지밴드라고도 불리는 대학록밴드는 신촌이나 홍대앞에 있는 클럽
(라이브무대를 갖춘 카페)에서 주로 활동하는 클럽밴드와 달리 학교내 이곳
저곳에서 게릴라처럼 공연을 갖는 록밴드를 말한다.

연세대의 록밴드 "빵"은 학생들이 등교할때쯤 20W짜리 앰프 몇 개를 들고
정문에서 마구 연주하고 달아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데모테이프를 내거나 연습실을 갖고 있는 밴드들도 거의 없다.

그래서 자신들을 "언더중의 언더밴드"라고 자랑한다.

대표적인 대학록밴드는 서울대의 "소시지" "스핏" "선데이서울" "미선이",
연세대의 "빵" "미르에타",외국어대의 "파우더밀"등.

이들 밴드는 95년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 지금은 각 캠퍼스에 4~5개에서
많게는 10여개로 늘어났다.

대학록밴드가 이렇듯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기존 시스템에 따라 제공되는 대중가요에 식상한 젊은이들이 새로운
음악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록밴드의 존립기반이 마련됐습니다.

대학록밴드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도 한 요인입니다.

80년대에는 장인정신 같은 게 남아있어서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후에
무대에 섰지만 이제는 "나도 할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클럽에 구경왔던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밴드를 만든적도 있었죠"
(언더그라운드 록음악잡지 "팬진 공"의 김종휘 편집인).

다른 장르에 비해 연주하기 쉬운 펑크음악이 1~2년전부터 붐을 이룬 것도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또 클럽이 신촌일대에 30여곳으로 늘어나고 오버그라운드의 록밴드들이
다시 언더그라운드로 역류할 정도로 언더음악이 중흥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학록밴드는 전통적인 록의 저항정신을 제대로 표출하고 있는가.

아직은 긍정도 부정도 할수없는 상황이라고 보면 정답이다.

진보와 보수, 분단, 노동문제등 거대 담론내의 저항은 이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개인의 욕망이 억압당하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 억압은 사회적 차별과 편견, 이기심, 권위주의, 소외와 같은 것들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본다.

스핏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오윤환(서울대 미학과 95학번)군은 한발 더
나아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저항을 음악으로 표현할수는 있지만 록이니까
더더욱 그래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은 이제 필요치 않다"고 잘라 말한다.

그래서 일상속에서 겪는 고민과 방황을 읊조리듯 노래하는 곡들도 많다.

인생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어떤 힘에 이끌려 왔다고 안타까워 하는
소시지의 "멀미", 다소 퇴폐적인 언어들로 시작하지만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미래가 있다는 스핏의 "세기말의 꿈"등이 그예다.

팬진공의 김종휘씨는 "저항의 전선은 이렇듯 옮겨가고 있지만 다수가
소수의 욕망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 대학록밴드가 늘어난다고
볼수 있다"며 이들이 갖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업화의 극단으로 내몰린 미국 록음악을 90년대에 회생시킨 얼터너티브
정신의 모태가 바로 "REM" 같은 대학록밴드였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이들도 실력을 쌓아 제도권내 인기 밴드로 크려는 부류와 이를
적대시하며 영원한 언더로 남으려는 그룹이 공존한다.

하지만 서로의 온기를 나누려는 연대활동이 요즘들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5월 서울대 야외수영장에서 열린 "97 칼리지
록 페스티발".

서울지역대학 록밴드 20여개가 모인 최초의 대학록밴드 축제였다.

지난해 열린 "소란"이란 언더그라운드 록밴드 축제에도 대학록밴드들이
적극 참여했다.

대학록밴드가 대학문화의 한 축으로 인정받고 취미생활 이상의 의미로
평가받으려면 이런 이벤트를 통해 의식적인 정체성 확인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장규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