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 / 중부대학교 영화과 교수 >


처음 국제영화제를 준비하며 하얀 도화지앞에 크레파스를 든 아이처럼
꿈과 환상과 모험에 대한 기대에 사로잡혀 흥분으로 가슴이 떨리던 지난해
기억은 이미 아스라한 추억이 됐다.

프로그래머 김홍준감독이 여러번 한 말이지만 이때는 정말 또 한편의
영화를 만드는 작업의 시작이기도 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영화가 다 만들어져 무사히
영화관에서 상영되기까지, 과연 그걸 확신하고 장담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는가.

빠르게는 기획단계에서, 또는 어렵게 시나리오까지 만들어 놓고서도,
심지어는 레디고를 부르고 난 뒤에도, 더 불행하게는 영화를 다 만들어
놓고도 일이 그르쳐져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한편의 영화가 무사히 모든 과정을 거쳐 극장에 상영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한다면 제1회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1년여의
산고를 무사히 넘기고 끝난데 대해 집행위원장으로서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지난 2월 사무국 직원들과 함께 눈 덮인 스키장의 설경과 작은 읍에서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지는 축제의 현장, 유바리 국제환상모험영화제를
다녀오면서 우리 부천의 행사도 찾아오는 모든 영화팬과 시민들이 함께
즐길수 있는 한판 축제이자 카타르시스의 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영화만 있으면 더 바랄게 없는 영화광들의 축제여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의 삶을 성실하고 힘겹게 영위하다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끔 극장을 찾는 보통사람들에게도 꿈과 환상을 주는, 그래서 다시금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그런 영화제, 그것이 바로 우리 영화제 식구들이
꿈꿔온 행사다.

그러나 이미 한차례의 영화제를 끝낸 지금 우리의 시선은 꿈과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한다.

또 그 현실은 우리에게 축제의 의미를 차갑게 돌아보게 한다.

결코 좋은 여건이라고 볼수 없는 띄엄띄엄 떨어진 상영관.

그러나 영화제가 진행된 8일동안 상영관마다 배낭하나 둘러메고 영화를
보기 위해 각지에서 모인 젊은 관객들로 객석은 매회 매진이었고 입석이라도
기다리는 관객들의 긴 줄은 해외 게스트들의 눈에도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또 한국영화 회고전과 한국 애니메이션 재발견을 위해 마련한 무료상영관
2곳이 연일 입석과 보조석을 꽉꽉 메웠던 현상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제를 만든 사람들의 몫은 아니다.

감탄과 칭찬은 관객, 그리고 거창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몫이고 우리
집행부가 할 일은 더 좋은 영화제를 만들기 위한 계속적인 노력뿐이다.

또 과연 영화제가 성공했느냐 못했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관객동원 기록이나
상영수입의 흑자여부만은 아니다.

축제가 끝난 지금은 모두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셈할 것이다.

꿈과 사랑과 환상이 지나간 부천은 부천대로 국제영화제의 득실을 따지고,
중앙정부는 나름대로 부천 국제영화제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것인가를
반추하고, 내무부는 또 그대로 "국제영화제를 빙자해 지방자치단체가 어려운
기업들에 기부금품을 모집하지나 않았는지" 돋보기를 들고 들여다 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산술적 계산보다 우리 한국사회의 문화풍토와 문화
의식에 문제는 없는지, 또 우리 현실속에서 국제영화제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다시 검토하는 일이다.

우리 문화가 세계속에 어떤 자리를 부여받고 있는지, 그 노력으로서
국제영화제가 얼마만한 성과를 거뒀는지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제1회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최는 그 성패여부를 논하기 이전에
21세기를 앞둔 문화운동으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방 소도시에서 열리는 사람 냄새나는 축제"는 그 규모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가치가 있다고 본다.

고위층에서 오가는 떡값의 몇만분의 1, 몇십만분의 1도 안되는 지극히
적은 예산으로도 풍성한 행사를 치르고 우리 문화의 성과를 드높일수 있다면
정말 값진 일이 아닌가.

부천이 시작한 문화운동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마침내 그 바톤이 전국
각지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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