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혁 <미 캘리포니아대 객원교수>

정부는 벤처기업육성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집중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발표한바 있다.

벤처기업육성은, 다소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오늘날 산업경쟁력이
위기에 처한, 그리고 산업고도화의 전환기에 선 한국경제에서 불가피하고
핵심적인 과제로 생각된다.

그동안 구체적인 육성방안마련이 미흡했으나 벤처마킹을 통해 벤처기업
육성전략에 대한 시사를 얻을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즉 최근에 벤처기업들이 몰려들고 있고 성공을 거두고 있는 곳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등 각종 첨단단지, 대만의 신죽단지, 제3이탈리아의
산업지구, 영국의 엔터프라이즈존, 싱가포르의 비즈니스파크등.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첫째 국가경쟁력을 선도하는 첨단적 벤처기업은 아무 곳에서나 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산업화과정에서 한적한 해안을 매립하여 약간의 기반시설들을
만들고 공장을 지어서 몇년 내에 산업도시를 만들고 세계적인 기업들을
배출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신화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으며 특히 벤처기업은
그런 척박한 토양에서 성장할 수 없다.

벤처기업은 정보적 물류적 인적 제도적 기반이 형성된 위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

또 각종 도시 인프라의 직.간접적 지원이 필요하다.

아무런 산업적 기반이 없는 곳에 공장부지만 조성해 놓고 벤처기업이
입지하고 육성되기를 바라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어리석은 일이다.

더구나 아무런 적극적인 입지전략도 가지지 않은채 첨단산업지구의 개발을
방기한다면,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이 수도권의 여기저기에 모여들어 경쟁력도
구축하지 못한채 혼잡비용의 증대만을 가져올 것이다.

둘째 첨단산업을 특정산업 부문,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컴퓨터 전자통신
생화학 첨단소재 등으로만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한 부문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기존 산업들이며, 기호적 소비에 대응할 수만 있다면 이 산업들도
첨단산업화될 수 있고 고임금 구조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 산업들을 여하히 첨단화하고 고부가가치화하느냐 하는 것인데
우리는 외국의 여러 성공사례들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나 핵심적인 과제는 연구개발을 촉진하고 그것을 곧바로
상품화하는 기업구조 및 기업간 연계구조(즉 지역구조)를 창출하는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의 기존 산업부문에 있어서도 산업입지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 산업지구들은 우리나라의 공업단지들과는 달리 생산활동과 유통
연구개발 사무서비스활동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제품의 수명주기는 급속히 단축되고 있으며 기술발전과 시장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존속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 유통 연구 사무 서비스활동이 분산 입지해서는 유연한
생산체제를 구축할 수 없다.

앞에서 열거한 모든 산업지구 첨단단지들은 모두가 이 곳이 생산단지인지
연구단지인지 사무업무지역인지 유통구역인지 알수 없는 비즈니스파크들이고,
거기에 입주하고 있는 기업들도 한 곳에서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넷째 과도한 임금과 지가, 그리고 금리를 하향 안정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6공 정부이래 과도하게 팽창된 건설부문을 축소해야
할 것이다.

건설부문은 단기적으로 상당한 고용을 창출하고 자금 재화의 수요를
팽창시켜서 경기부양을 희망하는 민간정부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부문의 과도한 팽창은 고임금 고금리 고지가의 원인이 될수 있다.

거의 모든 첨단적 산업지구들이 상대적으로 값싼 토지위에서 성장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외국의 첨단기업을 우리 기업 이상으로 우대하고 적극적으로
유치하여야 한다.

다국적 기업의 경제침략이라는 종속이론적 사고에서 한시 바삐 탈출하여,
많은 우수 기업을 유치한 나라와 지역이 성공한다는 평범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앞의 사례들에서 보더라도 외국기업을 끌어들이지 않고 성공한 예는
하나도 없다.

이곳 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경제는 참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팔리는 한국상품이 사라져가고 있다.

장기적으로 벤처기업 육성은 이 위기를 극복하는 핵심적인 과제요, 열쇠가
될 수 있다.

우리 국내에서 첨단적 정보와 상품과 서비스가 생산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성공했던 기업과 방식만으로는 벤처기업 육성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현실에 새로운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