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나라에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작용도 할 수 있다는 최적의
실례가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의 경우다.

6공이 말기에 들어 업적과시와 정권 재창출 욕심에 이성을 잃고 천년대계인
국책사업을 덤벙덤벙 밀어 부치다가 깊이 좌초한 것이 그 전말이다.

따라서 그와관련 빚어진 일련의 차질은 있을 수 있는 실수나 과오라기
보다는 선의로 봐줘야 미필적 고의이고 분명 범죄행위라고 해도 망발은
아니다.

현정부도 양심의 명을 따른다면 계획을 처음부터 재검토하고 앞서의
책임을 추궁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이미 공저으이 13.7%가 진척돼 1조원의 자금지출, 파헤쳐 놓은
국토, 대내외적 체면등이 뒤엉킨 나머지 비용-공기를 계속 불리면서 손을
떼지 못하는 기호지세라 할것이다.

신의주~유라시아철도 연장을 염두에 둔다면 후대에 물려줄 유산이란
위안이 없는건 아니다.

그러나 4시간의 경부간 주행거리를 2시간40분으로 단축할뿐인 공사에
17조6천2백94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국비를 붓는 일에는 객관적 타당성이
생명이다.

기초적인 비용효과 분석, 고속도로 4개에 비유된다는 기회비용을
상식선에서 계산하더라도 무모했다는 쪽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전혀
어색하질 않다.

책임규명 무용론도 없진않으나 그렇지가 않다.

2005년 11월 완공을 목표로 한 이번 3차수정계획을 최초계획과 대비함
공사비는 5조8천4백억에서 무려 3배이상으로, 공기는 6년11개월이 늘어난
사실만으로도 계획의 입안과 결정이 얼마나 무근거, 무책임했던가 설명된다.

대선을 앞둔 92년6월 설계도면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정치적 이유 하나로
후닥닥 착공식부터 치르고 본 결과 하루도 편할 날 없이 떠오른 말썽드를
우리는 잊지 못한다.

기초조사 단축, 합작선과 차종의 졸속 결정에 잉 대전 대구 역사의 지하화,
경주문화재를 둘러싼 노선마찰이 시끄러웠고 근래 오면선 부실공사 노출과
그 감리를 둘러싼 물의가 전면 불신과 고속철 무용론을 낳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과거지사가 되게끔 문제의 소지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데서 심각성이 있다.

건교부 교통개발연구원이 제시한 최종안의 여러 수치에 대해서도
그 신빙성은 아직 객관적으로 공중된 것이 없다.

그중 더욱 분명한 허점은 시발역이 서울역인지 용산역인지 조차 확정안된
상태란 점이다.

말이 그렇지 지방역사의 지하화 변경만으로 1조3천억 공비와 긴 공백기간이
추가된 마당에 시발역의 혼선이 가져올 낭비를 과연 무시해도 좋은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고속철에 따르는 만가지 말썽은 졸속에 근원한다고
볼수 있다.

물러서 수 없는 국책사업이라면 이면 3차수정이 마지막 수정이 돼야하고,
그러려면 담당자들이 다시는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기술 경제측면에서
양심이 명하는 최종안에서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