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렬 <증권연구원 원장>

최근 경기불황에다 진로 대농 기아 등 대기업들의 부도위기까지 겹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전문경영자가 경영하는 기아의 부실화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경영자 시스템을 염원하는 많은 전문가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황은 경기순환의 결과에 따른 요인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대기업 그룹들의 연쇄부도 위기는 그 원인이 다르다.

경제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차입의존적 외형성장전략을
수정하지 않아 수익성과 경기적응력이 취약해진 결과일 따름이다.

96년말 현재 우리나라 30대 그룹의 평균 부채비율은 3백87%(50대 그룹은
3백97%)선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미국 1백60%(95년), 일본 2백6%(95년)에 비하여 매우 높은 수치이다.

우리 기업들은 오랫동안 가격규제와 진입규제 등으로 인한 보호아래 높은
매출마진율을 누려왔다.

95년말 우리 대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8.3%로서 미국의 7.7%, 일본의
3.3%보다 훨씬 높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외형만 키우면 독과점 이윤과 부동산가격 상승에
따른 이윤을 극대화할수 있었다.

또 대출금리 규제로 금리부담이 매우 낮았고 계열기업간 상호채무보증
등을 활용할수 있었다.

여기에 차입경영에 대한 금융시장의 감시기능까지 취약하여 대기업들은
부채를 활용한 확대 경영을 하여 왔다.

그 결과 우리 기업인들 사이에는 "대마불사"라는 신화가 번성했고, 이는
모험주의적 경영의식을 만연시켰다.

그 결과는 대기업들의 자산운용의 비효율성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고정자산회전율(매출액/고정자산)이 2.1회로서 미국의 3.2회 및
일본의 3.8회에 비하여 낮은 사실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금융비용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높은 것은 사실이나
그 주된 이유가 높은 금리수준 이외에도 금융부채의 절대량이 많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한 과다한 부채는 외형위주 성장전략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WTO체제의 출범과 OECD 가입으로 그동안 누려왔던 독과점이윤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 기업들은 국내외 시장에서 국경없는 피나는 경쟁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처럼 급속한 경영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경영행태를 혁신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들이 필연적으로 맞는 운명은 부도위기일 수밖에 없다.

사실 요즈음 문제가 된 기업들은 부도위기 직전까지 비업무용 부동산
처분과 같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던 것같다.

한국기업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경영 패러다임을 외형중심의
"양의 경영"에서 가치중심의 "질의 경영"으로 바꾸고 경제적 부가가치
(economic value added : EVA)라 불리는 가치경영 시스템 등을 도입하여야
할것이다.

EVA는 관리의 중심목표인 동시에 성과측정및 평가의 중심 지표이다.

EVA는 세후 영업이익에서 부채와 자기자본을 포함한 투자에 소요된 모든
투자자금에 대한 자본비용을 차감한 잔액이다.

EVA가 양의 값을 가지려면 투하자본 수익률이 자본비용을 초과하여야
한다.

투하자본 수익률은 영업마진과 자본회전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기업의
채산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반영한다.

자본비용에는 부채비용과 자기자본비용이 모두 반영되므로 EVA는
재무구조의 건전성까지 반영하게 되어 재무활동의 결과를 총괄적으로
평가하는 지표이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이 수익성을 측정할 때는 일반적으로 부채비용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실제로 수익성이 없는 투자안도 수익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고 이는 외형 부풀리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

EVA는 투자의사결정에 활용될 수 있다.

EVA의 증가는 부가가치 증가와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이의 증가여부를
측정하여 EVA값이 정인 투자안만을 선택하여야 한다.

또한 EVA는 이익의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을 측정하는 평가 방법이기
때문에 유용한 업적평가 방법이다.

임직원들의 업적급을 산정할 때도 유용한 지표로 이용될수 있다.

기업이 경영 패러다임을 외형중시의 양의 경영에서 가치중심의 질의
경영으로 전환하려면 다음 세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는 경영의 중심목표와 투자 프로젝트의 경제성 평가기준을 외형
극대화에서 가치극대화, 즉 명시적인 부의 창출로 바꾸어야 한다.

둘째 경영자의 경영실적을 평가하고 사업부서의 투자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매출손익에서 EVA와 같이 자본의 기회비용을 고려한 개념으로
바꾸어야 한다.

셋째 새롭게 설정된 목표와 실적평가기준에 따라 기업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경영 하부구조의 핵심인 CFO(chief financial officer)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

은행과 같은 대출 금융기관들이 대출여부를 결정할 때도 EVA는 활용될 수
있으며, 기업을 신규로 공개할 때나 유상증자 허용여부를 결정할 때도 EVA는
매우 가치있는 활용방안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