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평 < LG경제연 연구위원 >

치열한 세계 경제전쟁시대에는 기업과 함께 정부의 경쟁력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 영국이 시작한 국가 경쟁력의 종합적인 제고정책에 일본도 나서고
있다.

국민과 기업 위에 군림하면서 경제전반에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온 일본
관료시스템이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한 것이다.

하시모토 총리가 회장을 맡아 직접 지휘하고 있는 행정개혁회의가 추진
하는 중앙부처 재편, 내각의 권한 강화, 특수법인 통폐합 및 민영화 등의
개혁조치가 실현된다면 일본 경제 시스템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일본 행정개혁의 목적은 새 시대에 맞는 간소하고 효율적인 행정을 실현
하는 데 있다.

국민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행정을 실현하기 위해 민간부문과 정부부문의
역할분담을 제도적으로 재조정함으로써 규제완화를 촉진하려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같은 행정개혁이 필요하게 된 배경은 정부규제에 입각한
"일본형 자본주의"가 관료 시스템의 구조적 부패, 일본경제의 선진화,
글로벌경쟁의 격화, 대외적 영향력 강화의 필요성 등으로 인해 구조적
난관에 봉착했다는 데 있다.

특히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일본형 관료시스템은 산업계와 관료계
간의 유착을 낳게 되고, 이것이 장기화되다 보니 조직적인 부패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대장성 관료들의 잇따른 뇌물사건 등 관료개인의 부패도 문제이지만
구조화된 이권구조가 일본경제의 자유로운 발전과 자원배분의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다.

예산확보를 위해 경제성이 없는 공공사업을 계속한다든가, 관료출신의
취직선이 되는 기업이 정부 공기업에 독점적으로 자재 등을 납품하면서
고수익을 챙기는 부패구조가 만연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형 자본주의"라고 불려 왔던 경제시스템은 기업내 노조, 연공서열제,
협조적인 업계질서, 정부관료의 산업계 규제.지도를 근간으로 하되 관료의
청렴성이 성공의 전제조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관료시스템의 조직적 부패구조가 일본경제 시스템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행정개혁을 경제시스템과 국가체제의 혁신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본은
수직적으로 구성된 행정시스템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수평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체제구축에 나서고 있다.

현재 22개에 이르는 중앙부처는 1부 12성으로 개편될 전망이다.

정부부처 개편에서는 정보통신을 포함한 산업정책을 통합하기 위해서
통산성을 산업성으로 개편하고, 우정성을 해체하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그리고 정부 공공사업을 통합하기 위해 건설성의 도로 주택 등 주요조직,
운수성의 전조직, 국토청을 통합해 국토개발성을 창설하는 방안도
제시되었다.

그 외에 복지노동행정의 통합, 교육-과학기술행정의 일원화가 모색되고
있다.

행정부처 통합과 함께 정부조직중 정책의 기획 입안 부처와 정책집행부처를
분리하여 정책집행부처를 일본판 에이전시로 재편하는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중앙부처의 경우 정책 기획업무에만 특화시켜 현업과 관련된 업무를 외청
내지 독립행정법인으로 분리시킨다면 관료의 부패와 정부조직 축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관민유착의 온상이 되고 있는 정부계 금융기관과 일본도로공단 등의 특수
법인을 민영화하는 한편 우정성의 간이보험과 예금사업 부문을 민영화하여
재정투융자제도를 근본적으로 축소 개편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우체국 예금 잔액은 96년 3월말 기준으로 2백11조엔인데, 이중 1백55조엔이
대장성 자금운용부에 예탁되고 정부계 금융기관 공단 등의 특수법인 지원
자금으로 활용되고 있다.

재정투융자 자금의 기초인 우체국 간이보험이 민영화되면 재정투융자
제도의 개혁과 정부 특수법인의 민영화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총리의 리더십하에 내각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내각의 법적 권한
강화와 총리 보필체제의 정비가 추진되고 있다.

행정개혁회의는 각의에서의 총리역할을 정한 내각법 제4조를 개정하여
총리의 각의 발안권을 명확하게 규정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행정감찰 업무 등을 담당하는 종무성, 금융청 경제재정자문회의
등을 산하에 두게 될 내각부의 세개 조직이 내각을 강력하게 보필하는
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추진하는 행정개혁은 단순한 기구개편에 그치지 않고 경제 시스템
전체의 개혁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각종 장애를 극복하여 개혁이 실현될 경우 경제적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료조직 축소와 규제완화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행정개혁과
함께 규제완화가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 운수 통신 등 정부규제가 심했던 부문에서 구조조정을 촉진시키고
일본의 고비용 체질을 개선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보통신 관련 산업정책이 통산성을 개편한 산업성으로 통합될 경우 현재
통산성 우정성 건설성 등에서 분산 추진되고 있는 각종 멀티미디어 정책이
일관성을 갖게 되고 시너지 효과가 제고될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지속된 우정성과 NTT의 극심한 갈등에 따른 정보통신정책의
혼선도 해소될 전망이다.

노동부와 후생성의 통합은 차세대 유망산업인 의료-복지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복지 산업의 경우 두가지 부처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기업은 각종
인허가를 받기 위해 두배의 코스트를 지불해야 했는데, 두 부처가 통합되면
이러한 업무부담을 줄일 수 있고 신제품 신서비스의 개발이 촉진될 수 있다.

국토개발성과 국토보전성으로 공공사업이 집중되는 개혁이 이루어지면
부처별 이기주의로 공공사업 예산이 낭비되어온 폐해를 줄이고 공공사업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청과 문교부의 통합으로 과학기술정책과 교육정책의 일체적 추진
체제가 구축된 것은 대학교육과 과학기술 개발의 연속적 발전을 중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국에 비해 낙후된 일본 대학의 과학기술 환경을 개선시키는 한편 산.학
연계 기술개발도 촉진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행정개혁은 선진경제화의 과도기에 있는 우리로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장의 미비점을 이유로 행정적인 간여가 피할 수 없는 경우라도 늘
정부의 실패 가능성을 배제하도록 노력하는 한편 점차적으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나가는 시장활성화에 정책의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민간기업과 같이 정부부처 전체를
망라한 프로젝트팀 형의 수평적인 조직운영도 효과가 있다.

행정 서비스의 질향상과 효율화를 추진하면서 정부 규모를 일정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성역 없는 행정감찰을 담당하는 행정감독기관의 활성화
노력도 필요하다.

일본은 고도성장기인 60년대 말부터 공무원의 인원확대를 억제해 왔으며,
90년대에는 근본적인 행정개혁까지 시작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