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땐가는 병들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들도 어느 땐가는 병에 걸린다.

근래에 가장 자주 들었던 것이 영국병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대처 총리 집권때 이를 고치고 지금은 번영의 길을 걷고
있다.

나라의 병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도 벌써부터 한국병을 앓고 있으며 이것이 최근에는 위기적
상황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독일하면 그 어려운 통일도 거뜬히 이룩해낼 정도로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건강한 국가였다.

이런 독일이 지금 독일병을 앓고 있다.

서유럽 최장수 지도자이며 통독의 주역인 콜 총리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독일병 때문이다.

얼마전 헤럴드 트리뷴신문은 1면에서 "독일의 위기, 어둠이 짙어진다"는
제목으로 독일병의 증세를 진단했다.

독일은 전후 50년동안 마르크위기 인질위기 미사일위기 석유위기 등 어떤
위기도 극복해냈다.

이번엔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이름없는 위기라는 것이다.

이 위기감은 온나라에,시민들과 정치권에 널리 퍼져 있어 전후 독일을
번영시킨 시스템이 무장해제된 셈이다.

한국 대만 등이 경제적으로 떠오를때 신흥공업국 (NICS)이란 말이
유행했었다.

묘하게도 지난달 세계적 이코노미스트들이 독일에서 모여 토론한
국제회의 제목은 "새롭게 쇠퇴하는 국가들 (Newly Declining Countries)"
이었다.

독일인들은 전에는 결코 의심해본 적이 없는 자기들 시스템이 갑자기
바람빠져 마치 미래를 상실한것 같은 무력감에 빠져 있다.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

가장 모범적이었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신앙이 무너진 것이다.

이는 자기들이 최고라는 자긍심이 자폐증으로 이어진 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프랑스가 정권을 바꿔가면서 까지 개혁을 시도하는데 비해 독일은 세계
변화에 적응하기는커녕 각종 이익집단들이 기존의 제도적 특혜에만 매달려
변혁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독일의 시스템은 세계적 추세에서 벗어나 작동하기 어렵게
되었다.

남의 얘기를 더 할 겨를이 없다.

"새롭게 쇠망하는 국가들"이라는 문제제기는 한국병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