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성장률저하 국제수지적자확대를 동시에 겪고 있는 것은 위기
의식을 가지기에 충분할만큼 심각하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 경제가 장기적 쇠퇴국면에 접어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징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MIT대학의 서로 교수는 80년대 미국경제가 실업증가와 국제수지적자
확대의 국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을 일컬어 준저개발국이라고까지
부르면서, 미국경제를 회생시키는 장기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전국민이
단기적인 고통을 감내하면서 구조조정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오늘날의 우리나라에도 에누리없이 들어맞는 교훈이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고비용-저부가가치의 구조적 병리현상에서 비롯한다
는 진단에 대해서는 이미 전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한 처방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며, 특히 국가와
시장이 각각 또는 힘을 합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고비용은 근본적으로 시장수급상황의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현상이기
때문에 가격의 수급조정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일정한 기간후에는
자동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

그런데 고비용현상이 장기간 지속되고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로 내재화되고
있다면 이는 결국 시장메커니즘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고비용의 근본적인 치유는 규제완화를 통해서 시장경직성을 제거
하여 시장가격기구가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단기적인 고용안정에 치중하여 해고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시정되어야 한다.

이는 기업의 자구노력을 통한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마침내는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뿐만 아니라 고용구조를 왜곡시켜 당초 취지인 고용안정을
무색하게 만든다.

해고가 어려우면 기업은 신규채용을 꺼리게 될 뿐만 아니라 일용직과
임시직고용을 늘리는 등의 규제회피행동을 보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볼때 해고제한은 근로자 전체의 복지를 증대시키는 순효과보다
는 근로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미취업 근로자들을 희생시키는 기득권보호의
역효과를 낳게 된다.

금융규제의 완화 또한 금리인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국내 물가안정과 자본시장 교란방지를 이유로 해서 해외차입을
규제하는 것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통화정책이 물가안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물론 크지만 이제는 국내부문과
해외부문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통화관리가 요구되며, 해외투기자금의 시장
교란도 해외자금의 유입억제보다는 국내 실물경제의 경쟁력강화와 국내자본
시장의 성숙을 통해서 예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일본정부가 지난 5월에 각의를 통과한 "경제구조개혁과 창조를 위한 행동
계획"에서 고비용구조 해소를 위해 에너지 토지 물류-유통 안전 등의 분야에
서 발본적인 규제완화를 하나하나 집행해 나가겠다고 천명한 점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고비용구조 해소를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완화가 핵심인 것과는 달리 산업
구조를 고부가가치화해 나가는 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규제완화는 산업구조조정의 필요조건일뿐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며, 기업의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을 규제의 족쇄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 못지않게 기업의 부족한 역량을 보완해주는 지원이
요구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원은 금융 및 세제지원 등의 전통적인 좁은 의미에서의
범위를 넘어서 구조조정친화적인 법제도의 마련까지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대표적인 기업집단들이 부도위기에 직면하고 금융기관
들의 대외신용도가 떨어지는 심상치않은 상황에 있다.

지금 정부가 해야할 일은 구조조정의 1차적 책임이 기업에 있다는 사실과
국민경제의 파탄을 막아주는 최후의 보루로서 정부가 버티고 있다는 흔들림
없는 믿음을 국민과 기업에 심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정부고위관리의 언행일치와 신속하고도 단호한 행동이
뒷받침될 때에만 생겨날 수 있다.

기업부도의 1차적 책임은 경영자와 대주주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원칙이
확립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사유재산제도의 핵심이며 효율적인 기업지배구조의 근간을
이룬다.

경영정상화도 역시 기업의 몫이며, 정부는 기업의 자구노력과 인수-합병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와 관행을 세밀하게 조사해서 기민하게 치워주어야 한다.

그러나 연쇄부도를 막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이는 어음제도, 하청거래관계 등 개별기업의 귀책사유로 보기 어려운
사유로 발생하는 반면 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산업조정은 경영위기에 처한 기업의 구조조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미래유망산업이 부단히 생겨나는 신진대사가 활발해야만 경쟁력있는 산업
구조가 형성된다.

정부는 기술 인력 사회자본 입지 정보 등의 생산요소를 총량적으로
확대하는 현재의 정책에 추가해서 유망산업별로 애로요인과 정책수요를
세밀하게 파악해 범부처적으로 지원해나가는 협력체제를 갖추어야만 한다.

앞으로의 유망산업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의료-복지 해양 교육 국제화
관련분야 등의 서비스부문이 점점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