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심사기준을 강화하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움직임은 때가
때인만큼 특히 관심을 끈다.

1개사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거나 상위 3개사가 70%를 넘을 경우에만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으로 봐 규제하던 것을 "1개사 40% 3개사 60%"로
바꾸게 되면 현대와 대우의 기아공동인수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렇지않아도 기아를 삼성에 넘겨주려는 시나리오가 있다는 주장이
나돌았던 만큼 공정거래위의 의도에 대해 억측(?)이 구구한 것은 차라리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공정거래위의 주장은 다르다.

시장점유율기준은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을 따지는 여러 기준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규정변경을 기아문제와 연관짓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산업합리화나 국제경쟁력강화등 산업정책적 필요가 인정되는 경우
시장점유율에 관계없이 기업결합이 가능하게 돼있기 때문에 시장점유율기준이
바뀐다 하더라도 현대.대우의 기아인수가 불가능해지는 것도 아니라고
덧붙이고 있다.

또 현행 시장점유율 기준을 그대로 두더라도 이 규정만 따진다면
점유율 46.5%인 현대의 기아(점유율 28.6%)인수는 불가능하게 돼있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우리는 공정거래위의 이같은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다른 곳도 아닌 공정거래위원회가 특정그룹을 위해 그 경쟁자들의
발목을 묶을 목적으로 불공정한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일련의 정부움직임을 되새겨보면 세간에 나도는 소문대로
시나리오가 있지않으냐는 억측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참외밭을 지나면서 너무나 여러번 신발끈을 조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아문제는 채권은행단과 기아가 알아서할 일인 만큼 정부는 간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강경식 부총리의 발언과는 달리 기아경영진이 사퇴서를
제출하지않거나 인원감축에 대한 노조동의서가 없으면 지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재경원내부검토자료가 드러나고, 채권은행단의 방침이 이 문건과
똑같이 정해진 점만 해도 우선 그렇다.

또 "기아협력업체에 대한 추가지원은 없다"는 강부총리의 발언도
지금까지의 숱한 대기업도산때마다 정부관계자들이 적어도 말만은
"납품업체 연쇄부도를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던 것과 너무도 판이하다.

기아의 수출환어음 매입제한, 사실상 별의미도 없는 특례보증한도
확대외에는 전무한 협력업체지원등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노라면 이번
기아사태를 다루는 정부의 잣대는 다른 때와 다른 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기아문제처리를 놓고 엇갈린 이해당사자들의 어느 쪽을
편들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강조하고싶은 것은 정부가 공정하고 떳떳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아를 특정그룹에 넘기려는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억측이 증폭되지
않도록 "오해"를 살수도 있는 일은 삼가는 것이 옳다.

정부관계자들은 기아문제를 다룬 스스로의 자세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