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점점 커지고 복잡해진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점점 빠르게 바뀐다.

자연히, 세상을 조망하는 일이 힘들 뿐 아니라 그렇게 조망할 만한 마음의
여유를 지니기도 힘들다.

그래도 애써 느긋한 마음을 지니고 세상을 바라보면, 지금 정말로 중요한
일은 우리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라 안팎으로 크고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서 우리 눈길을 끌지만,
지금 인류의 미래에 관해서 뜻있는 탐색과 선택이 이루어지는 곳은 우주
정거장 "미르"와 화성탐사선 "마스 패스파인더"가 움직이는 하늘이다.

그동안 미르와 패스파인더는 외계에 관해서 많은 정보들을 제공해왔다.

그 정보들 가운데 가장 또렷이 드러나는 것은 우주 공간엔 사람이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우주 공간에선 사람이 꼭 가야 할 곳도 꼭 해야 할 일도 없다.

큰 돈을 들인 미르의 우주인들은 탐험가들이라기 보다는 감옥에 갇힌
존재들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생산해내는 뉴스들은 대부분 그 우주정거장에서
일어난 사고들에 관한 것들이다.

반면에 유인 탐사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화성에 간 패스파인더는 낯선
세계를 탐험하면서 뜻있는 정보들을 보내오고 있다.

낡은 미르를 대체할 "국제우주정거장"(International Space Station)은
적어도 1천억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패스파인더는 3억달러가 채
안들었다.

이런 대비는 사람이 우주 공간에선 노후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프도록
또렷이 보여준다.

사람의 노후화는 실은 꽤 오래 전부터 나온 현상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이 접근하거나 생존하기 힘든 상황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무기에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졌으니, 병사들을 보호하는 데는 큰
비용이 들고 성능에 큰 제약을 주지만, 병사들이 탑승해서 나올 이득은
그리 크지 않다.

예민한 기구들, 성능이 좋은 전산기, 그리고 발전된 전송기술은 그런
경향을 빠르게 심화시키고 있다.

우주 공간에선 그런 사정이 훨씬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지상의 환경에 맞게 진화해온 사람의 몸과 마음은 우주
공간에 적응하기 어렵다.

특히 뼈와 근육의 쇠퇴는 막기 아주 어렵다.

그런 현상은 몸이 무중력 상태에 적응하는 것이므로, 막막한 우주 공간
속을 좁은 우주선으로 여행할 때 사람의 마음이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으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보다 근본적으로, 막막한 우주 공간은 목숨이 짧은 사람의 우주 비행을
거의 무의미하게 만든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을 여행하는 데 자신의 삶이 바쳐진다면, 누가 우주
여행을 떠나겠는가.

그런 장애를 극복하려고, 과학소설 작가들은 "세대 우주선"(generation
starship)을 생각해냈다.

그것의 다른 이름인 "우주방주"(space ark)가 유창하게 설명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 안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들이 살면서 우주여행을 마칠 만큼
엄청나게 큰 우주선을 가리킨다.

그것은 아주 멋진 발명이었다.

아쉽게도, 그것은 실용적이 아님이 이제 드러났다.

그런 우주선을 움직일, 그것도 광속의 몇분의1 정도의 빠른 속도로,
동력은 존해하지 않는다.

적어도 현대의 과학 지식으로는.

따라서 이웃 별로 보낼 우주선은 아주 작은 것일 터이다.

그리고 거기 실릴 것은 거의 모두 정보일 것이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우주공간에서 가치가 있는 상품은 지식뿐임을
지적했다.

화물의 가치는,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수송비를 따를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 다시 확인된 것은 그 사실이 사람에게까지 적용되리라는 냉엄한
현실이다.

사람을 외계로 보내는 것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들 터이다.

실은 냉동된 수정란의 형태로 보내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외계의 인류 식민지는 아마도 우주선에 실린 정보를 바탕으로
기계적으로 구체화된 사람들에 의해 건설될 것이다.

우주 공간은 인류에겐 마지막이자 진정한 변경(frontier)이다.

얼마 전에 미국 항공우주국이 선언한 것처럼, 우주 공간으로 뻗어가는
것이 인류의 운명이다.

그런데 그런 변경이 거의 넘기 어려운 심연으로 판명된 것이다.

성간 여행이야 일상사고 은하 제국까지 당연한 것으로 그린 과학소설들을
읽으면서 꿈을 키운 세대에게 그 소식은 말할 수 없이 쓰다.

과학과 기술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근본적 성찰을 하도록 만드는
버릇이 있다.

사람들을 점점 많은 분야들에서 노후화함으로써, 그리고 마침내 우주
공간에서 그렇게 함으로써, 과학과 기술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들을 새롭게
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자연적 생식과정을 거치지 않고 유전자에 관한 정보로부터 기계적으로
구체화된 사람들은 낯선 개념이지만, 이제 그것은 우리에겐 피할 수 없는
화두다.

이 밤도 매연에 찌든 하늘 너머 공기가 없는 높은 곳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뜻깊은 전언들을 던져주는 우주정거장과 탐사선이 돌고 있다.

5년동안 작동하도록 만들어졌으나 벌써 11년 동안 버틴 낡고 위험한
우주선에 탄 세 우주비행사들을 생각하면, 열대야에 잠을 못이룬 도시인은
불안과 희망을 함께 느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