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부처 장관이 바뀌는 개각이 단행됐다.

이번 개각의 특징은 선거관리에 초점을 맞춘 내각이라는 것이다.

비록 야당에서 요구하는 중립내각은 아니지만 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을 제외하고 신한국당 의원직을 가진 모든 장관들이
물러났다는 점에서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나름대로 최소한의 모양새는
갖추었다고 할수 있다.

또다른 특징은 상당수의 장관들이 바뀌었지만 정책의 큰 줄기는 바뀌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같은 점은 고건총리와 강경식부총리가 유임된 데에서도 알수 있다.

특히 고건총리가 취임때부터 강조했던 규제완화및 올초부터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금융개혁은 일관되게 추진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총리와 부총리가 유임된데 비해 이번 개각폭이 예상보다 컸던 점은
다소 의외였다고 본다.

비록 단 하루를 맡더라도 국정의 중요성은 마찬가지인데 뚜렷한 이유없이
각부처 장관들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은 아무리 임기말이라고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새 내각은 연말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게 치를수 있도록 힘써야겠지만
그보다 먼저 경제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까지 줄줄이 쓰러지고 수많은 관련
업체들이 연쇄도산의 위기에 몰려 있는 실정이다.

이에따라 기업들의 어음부도율이 연일 사상 최고수준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자금시장이 경색돼 자칫 신용공황까지 우려되고 있다.

사정이 이처럼 다급한데도 그동안 정부의 대응자세는 전혀 기민하거나
미덥지가 못했다.

한 예로 금융개혁의 핵심이랄수 있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재경원과 한은의
밥그릇싸움으로 변질돼 진전을 보지 못하고 소모적 논쟁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보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 등 부도를 냈거나 부도일보 직전인
부실기업들을 정리하는 문제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원인의 하나는 임기말 권력의 누수현상으로 관계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집단이기주의로 합리적인 대안이 제시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경원과 한은간의 힘겨루기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다음 정부로
넘긴다고 해서 합리적인 방안이 갑자기 생기겠는가.

지금 우리는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있다.

그만큼 위기의식이 높다는 얘기다.

따라서 노.사.정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해 구조조정및 금융개혁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기아의 경영진과 채권단도 한발짝씩 양보해 도산위기에 몰린 협력
업체들의 어려움을 덜어줘야 한다.

특히 규제완화 금융개혁 구조조정 등의 정책과제는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따라서 새 내각은 남은 7개월동안 새로운 일을 벌이기 보다는 지금까지
해온 일의 마무리를 잘해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