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덜드는 정치" 입법을 표방해 여야가 경쟁하다시피 개회를 서둘렀던
제184회 임시국회는 각당의 근시안적 태도로 말미암아 바라던 소득없이
어제 폐회돼 국민의 정치에 대한 염증을 돋우었다.

한보사건과 92년대선 후유증으로 돈 덜드는 정치구조조성이란 절박한
국민적 공감아래 바로 성사될 기세이던 통합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
기운은 어느새 당리당략에 밀려 타협점을 못찾은 대치상태에서 폐회가 됐다.

여당의 대통령후보 경선과 느닷없는 후보아들의 병역기피 시비로 아까운
시간을 허송하던 공전국회는 결국 마지막날 수십개 의안을 일괄 통과시키는
전철을 또 밟고야 말았다.

대기업의 도산이 이어지는 어렵고도 소란한 시국에 민생일랑 아랑곳없이
정치는 오로지 잿밥 챙기는데 여념이 없고 임기말 무력감에 젖은 정부는
정부대로 책임을 지고 국정에 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당 경선패배자들은 깨끗한 승복의 선례를 세우지 못하고 파벌조성에
뛰어들 태세이며 야권은 야권대로 이합집산을 계속하고 있다.

독회 커녕 법안의 이름조차 모를 지경으로 언제나처럼 후다닥 통과시킨
여러 제정 개폐 법안들이 시행에 들어가자 마자 자체모순으로 저항을 빚는
일은 차라리 당연하다.

이번 통과된 신법 벤처기업육성 특조법이나, 신용카드업 진입규제 철폐를
골자로한 여신전문 금융업법도 상임위나 소위에서 다지고 다져 통과돼야만
마땅한 법이었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줄인다.

무엇보다 특위구성의 여야 의석배분으로 대치된 정치개혁 입법협상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채 회기를 끝낸 것이야말로 한국정치의 고질, 그 자체
이다.

고비용-저효율의 정치를 돈 덜쓰는 정치로 바꾸는 이상이야말로 여와 야가
다를수 없고 국민 누구한사람 마다할 일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이 중형을 사는 것도, 현직 대통령이 최악의 인기에 신음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름아닌 정치자금관련 사항이다.

그런데 단 한달 사이에 여야의 입장이 이렇게 달라질수 있는 것인가.

그래도 괜찮은가.

만일 여당이 소위 프리미엄에 탐을 내서 정치개혁입법에서 계속 꽁무니를
빼려 든다면, 그래서 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을 시늉만으로 끝내려는 속셈
이라면 이는 너무 심한 작심삼일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응보가 예외없이 준엄하리란 이치를 망각한 너무도
아둔한 소행이다.

8월 국회가 될지, 9월 국회가 될지 아직 점치기는 이르지만 문제는 여야가
고비용정치 개혁의 초지로 돌아가느냐에 달렸다.

그렇게만 된다면 12월 대선에 늦지 않게끔 개혁입법을 끝내는데 별다른
장애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리도 쉽게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다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하다.

다리를 엉성하게 놓아 참변을 빚는데도,정치를 잘못해 대통령들이 퇴임후
영어의 몸이 되는데도 더이상 무슨 경험이 또 필요하겠는가.

이제 남은 것은 개혁의 실행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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