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경우 재무구조는 기업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관점에서는 재무구조의 적정여부를
일률적으로 논할 수 없다.

문제는 재무구조가 개별기업에는 적정하여도 국민경제의 관점에서는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대부분의 기업이 과도하게 타인자본 의존적인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는 경우 경제가 불황에 빠지거나 주요 수출시장의
침체와 같은 충격에 노출될 때 기업의 연쇄파산과 대량실업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기업재무구조의 개선이 중요한 경제정책 과제가 되는 것은 연쇄파산과
대량실업의 사회적 손실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부채비율이 일정수준
이상인 기업에 대해 지급이자의 손금산입을 제한하는 정책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개별기업이나 산업의 특징에 따라 적정 재무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설정된 기준에 의해 재무구조의 건전도를 평가할 수는 없다.

둘째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사용된 자금에 대한 지급이자를 비용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은 기업과세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셋째 지급이자의 손금산입 제한으로는 재무구조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특히 정부가 설정한 기준보다 낮은 부채비율을 가진 기업의 경우에도
재무구조가 지나치게 타인자본 의존적인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넷째 사업의 부진으로 불가피하게 재무구조가 악화된 기업에 대한
지급이자 손금산입 제한은 재무구조의 개선보다는 자금경색의 심화와 파산을
유발할 위험성이 높다.

기업에는 자기자본보다 타인자본이 더 유리한 점이 몇가지 있다.

예를 들어 타인자본을 활용하면 소규모의 자기자본으로도 기업의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큰 사업을 벌일 수 있다.

금융기관 차입은 신주발행에 비해 훨씬 신속하고 거래비용이 적은 이점도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빠른 물가상승이 체질화되다시피한 상황에서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은 기업이 실물투자를 통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데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법인소득세와 개인소득세를 종합적으로 보면 자기자본보다는 타인자본에
대한 세부담이 더 적은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와 같이 타인자본이 자기자본에 비해 여러가지 면에서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타인자본에만 의존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파산의
위험이다.

비록 유한책임제도에 의하여 보호되기는 하지만 기업이 파산하면 기업주는
경영권을 상실하고 채무변제를 위해 기업을 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타인
자본의 활용은 기업의 파산확률이 과도하게 높아지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만약 정부가 금융 조세 행정 등의 지원을 통하여 기업의 파산을
방지하거나 파산에 따른 손실을 줄여준다면 기업은 타인자본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하여 정부지원이 없는 경우에 비해 재무구조를 더욱
타인자본 의존적으로 유지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재무구조의 취약성은 기본적으로 두가지 요인에 의해 유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관치금융에 의하여 금융기관의 자율성과 책임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대출심사와 대출에 대한 사후관리가 부실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기업의 파산,특히 대기업의 파산을 막기 위해 각종
지원을 제공해 왔다는 것이다.

1972년의 8.3긴급조치, 1980년대의 대규모 부실기업정리, 지난 4월에
도입된 부도방지협약제도 등이 좋은 예이다.

관치금융과 파산방지정책의 정책구도 아래서, 특히 대기업은 과도하게
부채에 의존하면서도 파산의 위험에 대한 걱정없이 방만한 경영에 탐닉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재무구조의 악화는 물론 대규모의 부실채권 발생과 부실기업의
양산이었다.

결국 재무구조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자의적인 금융정책과 불합리한
기업구제정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원인을 방치하면서 일부 자기자본의 비용을 줄여주거나 일부
타인자본의 비용을 높이는 선별적 조세정책을 사용한다면 재무구조의 왜곡을
바로잡지는 못하면서 조세정책만 왜곡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실제로 1972년부터 23년여간 시행된후 1995년에 폐지된 증자소득 공제
제도는 재무구조개선 효과는 얻지 못하고 너그러운 조세감면만 해 주었다.

지금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지급이자 손금산입제한도 그 성과면에서는
크게 다를바 없을 것이다.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조세정책수단으로는 재무구조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재무구조개선을 위해서는 더이상 대중적 접근방식의 조세정책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관치금융을 혁파하여 금융기관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금융산업이 시장원리에 따라 자원을 배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동시에 경영이 부실한 기업은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퇴출하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인수-합병을 제한함으로써 경영권을 과보호하는 정책도
점차 폐지되어야 하며, 정경유착을 통하여 비효율적인 기업이 살아남는
폐단도 없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