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행정에 의한 농어촌구조개선사업 성과에 대해 일부 여론의 질책이
거세게 일고 있다.

문민정부의 선거공약인 농어촌 개발대책으로서 92년이후 총 57조원의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가 시작되었고 이미 작년말까지 30조원이 지출되었으나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 또 하나의 실패작이라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성공한 농업정책을 찾아보기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렵다.

농업이라는 산업이 국민경제의 기간산업이며 다른 산업과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기본 철학과 그에 대한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없었던
때문이다.

농민과 농업의 발전을 위한 농정이 아니라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위한
것이었기에 그간의 농정자체가 농촌경제와 농민가계를 더욱 피폐케하고
농업생산력을 오리려 정체시키는데 기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논리에 의한 과시적 농정, 앞뒤도 없는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인한
농정실패의 부담이 농민에게 지워짐으로써 농정이 불신당하게 된 현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나마 있었던 농민을 위한 농정도 중앙정부에 의한 안일한 탁상행정과
일선관료들의 수동적 자세, 그리고 농정사업과 관련된 부패로 인해 실효를
거둔 것은 극히 드물다.

일각에서 일고 있는 농어촌구조개선사업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귀를
기울이면서 기본원칙에서부터 되짚어 우리농정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먼저 국민적 공감대위에 막대한 재정부담을 감수하면서 수행되어온 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정치논리에 의한 과시적 정책이 초래한 실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밀한 경제분석에 의한 과학적 정책수행이 아닌 외향적 성과위주의
정책수행이었기에 금을 돌로 변화시켜 버린 것이다.

둘째 지역적 특성을 무시한 중앙정부에 의한 획일적 정책수행이 내실있는
성과를 저해했다.

한국의 농업은 지역농업의 합성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역농업의 특성을 살려 지역경제와의 균형있는 발전으로 이어질때
성공가능성이 좀더 높아질 것이다.

셋째 현실적인 문제점을 도외시한 성급한 정책수행이 실패를 자초하고
있다.

따라서 단계적인 실험과정을 거쳐 잠재적인 문제와 장애요인을 제거한 후
본격적인 실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넷째 좋은 취지를 가지고 출발한 사업임에도 사후관리와 후속지원이
미비함으로 인해, 또는 수행과정에서의 부패비리로 인해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적에 근거한 공무원 인사관리제도등 행정부의 경쟁력
제고가 시급하다.

한편 농업구조개선사업에 대한 이러한 비판이 우리경제의 위기국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막대한 국고가 허비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경제난국을 빌미로 자칫 농업포기론에의 근시안적인 논리에
빠질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이미 70년대 이후 농정의 기조로 자리잡힌 개방농정이 수출주도형
공업화로 인한 인플레와 임금상승, 산업간 불균형 투자로 인해 초래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위해 저농산물 가격체제를 강화시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동안의 극심한 농공간 불균등투자로 인한 농업경쟁력 정체가 국내기업의
경쟁력제고에 걸림돌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도시자본의 지배조건하에서 초래된 농업생산력저하에 대해
정부에서는 근본적인 치유책대신 주곡증산과 가격지지 등 농업보호에 따르는
막대한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부족 농산물을 수입에 의해 충족함으로써
물가안정에도 기여케하는 개방농정에로 매진하여 급기야 UR에 완전 개방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러나 농산물시장의 완전개방에 의해 농산물의 무차별수입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경우 우리 농업은 자연적 사회적 여건상 생산기반마저 무너질 것이고
이로 인한 국민경제의 왜곡, 식량안보의 상실, 자연환경의 파괴, 농촌경제
파괴로 인한 사회문제 등 엄청난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지키기위해 농업의 경쟁력강화를 목적으로
한 농어촌구조개선사업에의 막대한 투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는 바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지난 개발연대동안 농업을 소홀히 하여 온 것에
대한 값비싼 대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제적 상황을 이유로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또다시 후퇴시키는
것은 향후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므로 농업에의 투자
자체를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무원칙한 농정을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강태훈 < 계명대 경제학과 교수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1일자).